항구·철도·도로까지 갖춘 교통 요지, 지방정부·지역주민 모두 ‘친현대車’ 공감대
현대차그룹이 지닌 기술적 역량의 집합체이자 정의선 회장의 역작이라 불리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이하 HMGMA)’이 올해 초 본격 가동에 돌입한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업계 안팎에선 공장 입지 선정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통상 공장의 입지 선정은 향후 공장 건립과 공장 운영 등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으로 여겨지는데 HMGMA의 경우 당초 입지 선정 결과를 두고 ‘의외의 결정’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장 준공 후 본격 가동에 돌입한 현 시점에선 ‘미래를 내다 본 탁월한 결정’이라는 호평이 뒤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정학적 강점은 물론 풍부한 인프라, 지역 사회의 긍정적 여론,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등 HMGMA의 강점으로 꼽히는 요인 대부분이 입지 선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HMGMA는 미국 남동부 해안에 맞닿은 조지아주 내에서도 동쪽 해안가 인근 브라이언 카운티 엘라벨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리적으로 울산광역시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의선이 찾아낸 소나무 숲의 진가…항구·철도·도로까지 갖춘 사통발달 교통의 요지
HMGMA 대지 면적은 무려 1176만㎡(약 355만평)에 달한다. 포털 사이트 위성 사진으로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HMGMA 내에는 최첨단 자동차 생산라인은 물론 배터리, 철강 프레스 등 자동차에 들어가는 재료 생산 시설도 갖춰져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이러한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출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탁월한 입지 선정을 꼽는 시각이 많다. HMGMA가 제품의 운송이나 인력 조달, 각종 인프라 등을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우선 HMGMA는 지정학적으로 미국 물류 공급망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HMGMA 지척 거리에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컨테이너 항만인 서베너 항구(Port of Savannah)가 자리하고 있다. HMGMA와 서베너 항구 간 거리는 불과 27Km로 16번 고속도로를 통해 화물을 운반 시 운송시간은 30분밖에 내외에 불과하다. 2023년 기준 서베너 항구의 물동량은 540만TEU(20피트 컨테이너)다. 동부 해안 컨테이너 무역의 22.1%에 달하는 수준이다. 월별 물동량을 최소 40만TEU에서 최대 60만TEU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항만의 총 물동량은 3170만TEU였다.
미국 전역을 이어주고 있는 화물 철도 인프라 또한 HMGMA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CSX △놀포크 서던(Norfolk Southern) △쇼트라인(Shortlines) 등 총 3개 화물 철도 노선이 서베너시(Savannah City)를 관통한다. 이들 노선은 미국 전역의 대도시와 모두 연결돼 있다. 서베너시에선 애틀랜타와 이어지는 16번 고속도로와 플로리다·워싱턴D로 이어지는 95번 고속도로도 이용 가능하다. 16번 고속도로를 통해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20번·85번·75번 등의 고속도로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미국 교통부(DOT)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톤-마일(1톤무게를 1마일 운송) 당 운송 수단별 평균 비용은 △항공 1.5달러 △도로(트럭) 0.3달러 △철도 0.05달러 △수로 0.02달러 등이다. HMGMA는 가장 저렴한 수로·철도·도로 등을 동시에 이용 가능한 셈으로 물류 운송비용 절감을 통해 제품 가격 경쟁력 확보가 용이해진다.
세금혜택·지원금·교통인프라 지원에 우호적 지역 여론 업고 ‘노조 없는 공장’ 기대감 쑥
현대차그룹의 HMGMA 입지 선정이 높게 평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정부의 획기적 지원과 풍부한 인프라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9년부터 조지아주에 위치한 기아차 웨스트 포인트 공장을 운영하며 조지아주와 깊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다. 조지아주는 그동안 쌓인 신뢰감을 바탕으로 이번 HMGMA 입지 선정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에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 △지역 경제 사업 지원 보조금(REBA) 5000만달러(약 700억원) 지원 △자유항 면제 정책 및 일자리 세액공제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직접적인 금전 지원 외에 교통 인프라 확충 등의 간접 지원도 약속했다. 2억달러(약 2800억원)를 투입해 HMGMA의 주요 도로인 16번 고속도로와 280번 고속도로 잇는 새로운 교차로를 건설하고 280번 고속도로를 2차로에서 5차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진 중이다. 또 687만달러(약 100억원)을 투자해 HMGMA 인근까지 화물 철도를 연장할 계획이다. 교통 인프라 확장 프로젝트 완공 일정까진 기한이 남긴 했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HMGMA의 교통 인프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다.
HMGMA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서베너시 또한 현대차그룹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HMGMA는 일간 약 400만갤런(약 1500리터)의 공업용수를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 서베너시는 4개의 우물을 설치해줬다. 또 시내에 있는 폐수 처리 시설 제공도 약속했다. 조지아주와 서베너시의 중간에 자리한 브라이언 카운티(Brian County)는 HMGMA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산업단지 형성을 추진 중이다. HMGMA 인근에 ‘밸파스트 크로싱(Belfast Crossing)’이라는 이름의 산업 단지를 조성해 부품 공급 업체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현대차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는 일부 협력사가 산업단지 입점 계약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행정뿐 아니라 지역 여론도 현대차그룹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일부 주민들이 HMGMA의 수자원 사용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긴 했지만 지방정부의 중재 덕에 지금은 목소리가 누그러진 상태이며 오히려 대다수 주민들은 HMGMA로 인한 경제적 효과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기업에 대한 우호적 여론은 향후 인재 확보나 공장 확장·운영 등에 있어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요인이다. 향후 노조 형성이나 활동을 위축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HMGMA에서 근무 중인 트리나(Trina) 씨는 “최첨단 시설인 만큼 일 자체가 매우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공장 설계가 인상적이다”며 “게다가 한국인 직원들과의 소통 기회를 자주 부여해 문화적 차이로 발생하는 오해나 갈등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공장 내 미국인들은 한국 직원들을 동부의 남부인(southerners of the East)이라 부르고 있다”며 “동쪽(한국)에서 왔지만 우리 남부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직원인 네브라(Nebra) 씨는 “과거에 다른 공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내 입장에서 HMGMA는 천국이다”며 “근로자 안전을 배려한 시설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연봉이 아주 높진 않지만 이 정도 시설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하며 정년까지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선 HMGMA는 국내 공장과 달리 노조가 결성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직원들을 비롯한 지역 여론이 HMGMA에 상당히 우호적인데다 지방정부 역시 친 기업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는 ‘일 할 권리법(Right to Work)’을 채택한 몇 안 되는 곳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조지아주 내에서 근로자 간 노조 가입 및 파업 동조 압박은 불법이다. 모든 근로자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만 노조 가입 및 쟁의활동을 할 수 있으며 외부 압박으로 인한 노조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조지아주 임금 근로자 중 노조 가입자 비중은 3.8%로 이는 미국 평균(9.9%) 대비 현저히 낮은 수치다.
미국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조지아주와 현대차그룹은 서로 협력해 HMGMA를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공장으로 만들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HMGMA의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는 최첨단 시설이 적용됐다는 점도 있지만 입지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HMGMA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세워진 공장을 제치고 현대차그룹 주력 생산기지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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