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부모는 악마"…16개월 정인이 죽음에 전국민이 분노
文 대통령 신년 회견서도 언급…신고 종결 처리한 경찰 무더기 징계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0년 10월 13일 오후 어머니 A 씨(1986년 11월생)는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축 늘어진 16개월짜리 딸 정인이(가명· 입양후 안율하· 2019년 6월 10일생)와 함께 이대 목동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인이 상태가 나쁘다"고 하자 A는 "우리 애 죽으면 어떡해요"라며 울부짖었다.
그날 오후 6시 40분 정은이 사망 판정을 내린 의료진은 온몸에 든 멍, 다발성 골절 등 뚜렷한 학대 의심정황에 따라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의료진은 울부짖는 연기를 한 A를 보면서 "진짜 악마가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그 후 이 일은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대통령, 정치계, 검찰, 경찰, 의료계, 입양기관, 종교계 모두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부검결과 췌장절단, 장간막 파열 등 참혹한 사실과 함께 '어른이 9kg에 불과한 정은이 배를 발로 짓밟지 않았나 싶다'는 전문가 소견이 알려지자 분노는 극에 달했다.
3달여 뒤 재감정에 참여한 법의학 권위자인 이정빈 가천대 의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까지 "제가 정인이라면 '어차피 죽일 거라며 빨리 죽여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죽은 뒤에도 '밟아 죽여줘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라며 "어떻게 아이 배를 밟아 죽일 수 있느냐, 이번처럼 감정이 격해진 경우는 처음이다"고 치를 떨었다.
장간막 출혈, 소장 대장 파열, 췌장 절단, 쇄골 갈비뼈 대퇴골 등 10군데 골절
사건 직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정인이가 "장기 파열에 따른 출혈이 직접적 사인"이라고 밝혔다.
국과수는 정인이에게서 △ 소장, 대장 파열 △ 췌장 절단 △ 그에 따른 장간막 출혈 △ 쇄골, 갈비뼈, 양쪽 팔꿈치, 갈비뼈, 대퇴부, 후두부 등 10군데 골절상을 확인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췌장이 절단되려면 배가 척추에 맞닿아야만 가능하다"며 "99.9999% 어른이 정은이 배를 발로 있는 힘껏 밟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러한 정도의 부상은 정상적인 양육 상태의 아이에게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며 A 부부의 가학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인이 고통…교통사고 또는 프로 격투기 선수가 있는 힘껏 발로 차는 수준
응급의학, 법의학, 외상 의학 분야 전문의는 정인이 상태에 대해 "소장과 대장 장간막 열창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충격으로는 쉽게 발생할 수 없고, 교통사고 정도의 강한 외력이 가해져야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췌장 절단은 "정인이가 엎드린 상태에서 체중으로 강한 압력을 가했거나, 정인이가 서 있는 상태에서 옆을 발로 차거나, 위에서 무거운 물건으로 치는 등 강한 압력이 가해지는 경우에만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2021년 1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은 9kg 남짓한 아이의 췌장이 절단되려면 "남자 미들급 (73kg) 프로 격투기 선수가 발로 타격했을 때 정도의 충격, 어른이 소파에서 뛰어내려 밟았을 때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라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정인이'…윤석열 檢총장 "무조건 살인죄로"
정인이 사건이 준 충격파가 얼마나 컸던지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1년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를 언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건을 맡은 서울 남부지검이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기소하자 "이런 사건을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이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라며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검찰은 2021년 1월 13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이상주) 심리로 열린 1차 공판 때 A에 대해 주위적 공소사실로 '살인 혐의', 예비적 공소사실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공소장 변경 신청해 재판부의 허락을 받았다.
살인죄 법정형량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대법원 양형권고 기준이 '살인죄 기본 10~16년, 아동학대치사죄 기본 4~7년'으로 살인죄에 대해 좀 더 무거운 벌을 내리는 차이가 있다.
1심, 살인 혐의 양모 무기징역· 방임 방조 양부 징역 5년형…2심· 3심, 양모 징역 35년
2021년 5월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피고인이 누워 있는 피해자 복부를 적어도 2회 이상 발로 밟는 등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 절단과 장간막 파열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상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비인간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며 무기징역형에 처했다.
또 방임 혐의와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기소된 A의 남편 B에게는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구형한 검찰과 A가 나란히 항소한 가운데 2021년 11월 26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성수제)는 △ 살인 의도를 가지고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보긴 어려운 점 △ 살인 증거를 은폐하려고 하진 않은 점 △ A가 문제점을 개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 35년형으로 감형했다.
B에게는 아동학대 혐의를 무죄로 보면서도 "피해자 보호 조처는 않고 A의 기분을 살피며 오랜 기간 학대를 방관했다"며 징역 5년형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2022년 2월 5일 A와 B에 대해 각각 징역 35년형, 5년형을 확정했다.
후폭풍…법원· 입양기관 질타, 3차례 아동학대 신고 무혐의 처리 경찰 무더기 징계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회단체, 어머니들은 "사형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감형이 웬 말이냐"고 분노를 쏟아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80년을 넘게 살았을 아이가 16개월 인생의 절반을 끔찍한 학대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며 법원 판결에 항의했다.
또 2019년 7월 A 부부를 두 달 된 정인이 양부모로 정해 준 입양기관 '홀트 아동복지회'도 사전, 사후 관리가 부실했다는 여론 질타에 고개 숙여야 했다.
서울양천경찰서가 정인이에 대한 학대의심 신고를 받고도 '무혐의' 종결 처리한 사실과 관련해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했고 양천경찰서 서장 대기발령 등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가 진행됐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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