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멜로와 로맨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영화와 관련한 글을 쓰면서 항상 두 장르는 '멜로/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붙어있었기에, 딱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멜로는 진지하고 무겁지만, 로맨스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코믹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지점을 담은 것이 멜로, 서로의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 로맨스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사랑의 완성 지점 차이), 이 역시 모르겠다.
'멜로 드라마'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멜로스(노래)', '드라마(극)'로 봐도 와닿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은 '마침내', 그 의미를 해체하기 위해 나타난 존재 같았다.
매사 본분에 충실하면서 자기 일에 자긍심을 지닌 형사 '해준'(박해일)은 시경 사상 최연소로 경감의 직위에 오른 유능한 경찰로 설정됐다.
사건 현장에서 그는 모든 기록을 자신의 스마트 워치에 녹음으로 남겼는데,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하는 거야"라는 말처럼 불면증으로 인해 밤샘 잠복 수사가 일상이 됐다.
그러던 중 '기도수'(유승목)라는 남자가 산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건을 담당한 '해준'은 '도수'의 아내, '송서래'(탕웨이)를 만난다.
중국인인 '서래'는 서툴지만, AI 통역을 받으면서 분명하게 의사를 한국어로 표현하며, 망설임 없이 '해준'을 대하고, 조사를 받는다.

태연하게 '도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래'를 본 '해준'은 강한 호기심으로 '서래'를 대한다.
묘하게 '서래'가 사는 아파트를 멀리서 망원경을 통해 지켜보며 잠복을 시행하는(관객도 함께 이를 관음하는 것처럼 영화는 설계됐다) 등 두 사람의 관계는 깊은 감정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도 '서래'의 알리바이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자신도 무너지게 된다.
한편, '해준'은 역대 최연소로 원자로 조종 감독자로 일하는 '정안'(이정현)과 결혼한 사이였다.
경북 '이포(가상 지역)'에 있는 원전에서 근무하는 탓에 부산에서 일하는 '해준'과는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정안'은 사건에만 매달리는 남편이 '이포'로 전근을 와서 함께 살기를 바란다.
<헤어질 결심>은 수식어가 딱히 필요 없는, 명실상부한 현재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그의 별명인 '깐느박'답게, 칸영화제는 그에게 첫 감독상을 안겨줬다.
그의 전작 <아가씨>(2016년) 개봉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칸에서 상도 못 받고 고배만 마시고 왔다"라는 인사를 남겼던 것이 문득 오버랩되기도 했지만, 그래서인지 한결 <헤어질 결심>의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마음을 한숨 놓은 모습으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남겼다.

'흥미롭게도' 기자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날아온 질문은 <헤어질 결심>의 본질에선 한 걸음 물러나 있어도, 마냥 거리감을 둘 순 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전작들에서 볼 수 있는 그로테스크한 묘사, 잔인한 장면, 선정적인 장면(물론 '해준'과 '정안'의 '의무방어전'과 같은 장면이 있긴 하지만)이 거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 첫 번째였다.
물론, 그는 그런 장면 없이도, 영화가 '어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마냥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았고, 미묘하고, 우아하면서, 유머러스하게 보여줬다.
오히려 어른들의 이야기이니, 노출이 많겠다는 반응을 듣고, 반대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했다고.
중간에 나온 질문은 <헤어질 결심>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는 것.
버나드 허먼 음악감독의 현악을 주로 사용했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처럼, 이번 영화의 음악은 현악이 강조됐다.
언급했던 망원경 염탐 장면은 <이창>(1954년)을 떠올리게 하고, 사건에 의심을 던진 형사와 '팜므파탈'의 관계는 <현기증>(1958년)을 떠올리게 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교과서처럼 대학 시절에 봤던 작품이고, 그 기억이 자신의 핏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영화 팬이라면 어쩌면 머리를 끄덕일 답변을 전했다.
참고로 정서경 작가에게 박 감독이 참고하라고 했던 영화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1945년)다.

본질은 아니겠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DNA에 담긴 형태로, 박찬욱 감독은 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직접적인 대사로 두 사람이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기진 않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스며드는 작품의 분위기 속에서 증명했다.
그 증명의 방법 중 하나는 언급했던 고전 작품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사용이었다.
최근 만들어진 몇몇 멜로, 로맨스 장르물이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 고백(편지 등)을 판박이 하면서 느낀 현실과의 부조화가 있었는데, <헤어질 결심>은 스마트 세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충실히 채워 넣어줬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스마트폰 번역 앱은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의 소통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줬는데, 특유의 번역 문체에서 오는 이질감은 작품의 미묘한 층위를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마침내'라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 쓰는 부사가 번역을 통해서 등장하는 대목이 있었다.
여기에 '서래'의 혼잣말이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로 번역됐지만, '심장'은 '마음'으로 봐야 할 번역이었다.
하지만 '심장'이라는 번역 때문에, 오히려 '해준'은 그야말로 심장을 번제할 것 같은 마음으로 '서래'에 대한 마음을 품는다.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단절, 혹은 해소는 이 작품의 또 다른 포인트처럼 느껴졌다.

다시 멜로와 로맨스의 차이로 돌아가자.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지점을 담은 것이 멜로라고 정의한다면,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이야기를 향해 달려간다.
다만, 영화는 마지막 '파도치는 바다' 장면에서 조금 더 연장선을 짓는다.
'서래'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과 '해준'의 사랑이 다시 시작되려는 순간의 이미지가 밀려오는 파도와 겹친 것.
그 장면의 밀도는 단연 압권이었고, 어찌 보면 박찬욱 감독이 그 엔딩 장면을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감정의 연장선'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멜로의 관점을 재정의한 것일 테니.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2022년 최고의 멜로 영화가 아닐까?
2022/06/21 CGV 용산아이파크몰
- 감독
- 박찬욱
- 출연
-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박정민
- 평점
- 8.2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5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