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작가님이 직접 운영한다고?…‘3평’ 골목책방 앞은 인산인해

한강이 운영하는 작은 동네서점
통의동 골목 입소문 타고 북적
1시 개점 직후 한강 소설 품절
“女 문학가, 동네서점 더 잘되길”

11일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 입장하기위해 줄을 서고있다. 2024.10.11 [김호영 기자]

“아침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소년이 온다’는 벌써 품절이네요.”

11일 오후 1시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과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책방 오늘’ 앞, 계산을 마치고 나온 윤예지 씨(35)는 아쉬워하면서도 설레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못 산 책 대신 한강의 또 다른 소설 ‘흰’과 최진영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 두 권을 손에 쥐었다. 윤씨는 “원래도 작가님 문체를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어젯밤 노벨상 소식을 듣고 책을 소장하고 싶어서 마침 서촌에 온 김에 찾아왔다”며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이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들을 골랐다”고 했다.

널리 알린 적은 없지만, 한강은 약 6년 전 서울에 서점을 열었다. 2018년 서초구 양재동에서 시작해 지난해 7월 지금 자리로 옮겼다. 이날 책방은 개점 시간인 1시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3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라 줄을 서서 입장했고, 서점이 꽉 찬 후엔 책방지기의 안내에 한 명씩 들어가고 나가기도 했다. 전날 밤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례 없던 ‘책방 오픈런’이 벌어진 것이다.

근처 직장인 최희윤 씨(36)는 “기왕이면 동네 책방에서 한강 작가님 책을 사려고 나왔다가 직접 운영도 하시는 곳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복궁에 현장 체험 학습을 지도하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다는 교사 고은주 씨(53)도 “모처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소식이었는데 의미 있는 책방에서 책도 살 수 있어서 행운”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11일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 입장하기위해 줄을 서고있다. 2024.10.11 [김호영 기자]

11일 작가 한강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동네서점 ‘책방 오늘’에 긴 줄이 늘어서자 책방지기가 나와 질서 유지에 관한 안내를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한강 작가가 이곳 서점의 대표자란 사실은 이전에 영수증에 찍히던 ‘대표자명’이나 몇 차례 방문 덕에 거주민이나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단다. 서촌에서 나고 자랐다는 한 60대 남성도 “알고 있었다. 약속 나가는 길에 들러봤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상은 씨(45)도 “양재동 시절부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며 “오늘은 혹시라도 사인본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와봤다”고 했다. 다만 사인은커녕 책 재고도 금방 동이 났다. 책방지기는 “노벨상 수상은 예상 못 했던 소식이라 따로 재고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평소 작가님과 따로 연락은 하지 않고 직원들끼리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방은 빨간 단층 벽돌 건물에 큰 창과 아기자기한 손글씨 안내문으로 꾸며져 골목을 따뜻하게 밝히고 있다. 서가 곳곳에 책을 소개하는 메모지가 붙어 있고, 작가 한 명을 선정해 꾸민 ‘작가의 서가’에선 해당 작가의 추천 책과 집필 서적을 볼 수 있다. 한쪽의 공중전화 부스에선 수화기로 박완서, 버지니아 울프 등 명작가들의 육성이 흘러나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11일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 입장하기위해 줄을 서고있다. 2024.10.11 [김호영 기자]

책방 위치가 최근 인기를 끈 일으킨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맛집 주변이라는 점도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로 출연한 임태훈의 중식당 ‘도량’과 백수저 셰프 박준우의 디저티 카페 ‘오쁘띠베르’가 가깝다. 누리꾼들은 ‘동네 터가 좋다’ ‘책방, 중식당, 카페를 들르는 코스로 가면 되겠다’는 등의 글을 올리며 노벨문학상 훈풍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