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간 곁 지키고, 마지막엔 발목 잡은 ‘김봉현의 조력자들’
친누나, 남자친구 통해 숨겨줘
지인들도 ‘동선 교란’ 등 가세
위치 추적 장치 끊어 준 조카
실형 위기에 핵심 단서 털어놔
1조6000억원대 사기 사건의 몸통이 49일간 사라졌다. 앞서 한 차례 수사망을 피해 도주했다가 잡힌 터였다. 손목엔 실시간 위치정보를 전송하는 전자장치도 있었다. ‘라임사태 몸통’으로 불리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사진)의 이야기다. 김 전 회장은 어떻게 수많은 폐쇄회로(CC)TV와 수사망을 뚫고 도주할 수 있었을까. ‘역대급’ 도주 사건을 24일 재구성했다.
2021년 7월20일, 김 전 회장은 서울남부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도주했다가 붙잡혀 구속된 지 16개월 만이었다. 구치소에서 풀려났지만 상황은 김 전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할 것으로 의심해 같은 해 9월과 10월 법원에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패소가 유력한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이 구속을 피할 방법은 재판부에 ‘증거인멸과 도주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난 후부터 11월 결심공판 전까지 모든 재판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시기 이미 중국 밀항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심공판을 1시간 앞둔 지난해 11월11일 오후 1시30분, 김 전 회장은 도주했다. 앞서 한 차례 도주에 실패한 김 전 회장은 다수의 조력자를 이용했다.
김 전 회장은 조카 김모씨를 설득했다. 김씨는 도주 당일 김 전 회장을 태우고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남단으로 향했다. 검찰은 김씨가 김 전 회장의 전자장치를 끊을 때 도움을 준 것으로 본다. 미국에 있던 김 전 회장의 친누나 A씨도 도주를 도왔다. A씨는 자신의 남자친구, 연예기획사 관계자 B씨와 함께 보이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김 전 회장을 숨겼다. B씨는 김 전 회장이 2019년 도주했을 때도 그를 호텔에 숨겨준 인물로, 보석 석방 이후에도 대포폰 1대를 개통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회장은 지인들도 도주에 이용했다. 김 전 회장의 친구 C씨는 조카 김씨 차에서 내린 김 전 회장을 태운 뒤 두 차례 차량을 바꿔 동선을 지웠다. 다른 친구 D씨는 자신의 후배 E씨로 하여금 아파트를 구하게 한 뒤 김 전 회장을 묵게 했다. 김 전 회장은 도주 3일차인 지난해 11월13일부터 지난해 12월29일 검거될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김 전 회장은 그 대가로 C씨와 D씨에게 사설 토토·카지노 운영 등 이권 및 거액의 현금을 약속했다.
김 전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 역시 조력자들이었다. 검찰은 조카 김씨가 전자팔찌를 훼손한 점을 들어 범인도피죄 대신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실형 위기에 처한 김씨는 검찰에서 핵심 단서를 모두 털어놨다. 김 전 회장이 ‘후미등이 고장 난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으며, 전화하면서 어느 식당 이름을 여러 번 말한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식당 이름을 반복해 검색한 휴대전화 번호를 역추적했다. 이 휴대전화 발신 내역에 C씨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C씨를 체포했다. D씨는 다음날 검찰에 자수하며 김 전 회장의 은신처를 털어놨다. 검찰은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아파트에 은신해 있던 김 전 회장을 급습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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