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 시인 2026. 1. 1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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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참 어려운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반응이 오는 경우가 10분의 1일까 100분의 1일까.

이런 은밀한 곳에서 사랑을 나눌 때마다 한 사람이 "조금 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왜 문학작품 속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혹은 이뤘으나 산산조각이 난 사랑을 다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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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김박은경의 ‘고백의 조금’
고백, 말없이 사라지지 않겠단 다짐
고백은 다정과 맞닿아 있을까
조용한 사랑도 어려운 시대

고백의 조금

오늘 하루 어땠어?
웃었지 울었지만 웃었어요
그래요, 정말요, 진짜요, 세상에나
닮은 말을 번갈아서 반복하면서
속기만 하면서 나쁘기만 하면서

아닌 척 좋은 척도 힘이 들어
이런 건 죽은 것이 아닐까

달이 작아지는 건지 커지는 건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데
언젠가와 다르지도 않은데

달 없는 밤도 없는 방도 없는 어두운 공원에서
사랑을 나눌 때마다 조금 울 것 같아

고백은 절대로 말없이 사라지지 않겠다는 것
다정은 고백과 닿아 있어야 해
정말이지 사라질 때 꼭 말해줘야 해
그런 당부를 한다 해도 말없이 사라지겠지

아무래도 이 사랑을 들키고 싶지가 않아

「사람은 사랑의 기준」, 여우난골, 2023년

맘놓고 사랑하는 것도 힘겨운 시대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에서 참 어려운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반응이 오는 경우가 10분의 1일까 100분의 1일까. 그 어느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도 짐짓 시치미를 떼고 숨기는 짝사랑이 차라리 편하기도 하다.

"고백은 절대로 말없이 사라지지 않겠다는 것/다정은 고백과 닿아 있어야 해"라는 구절에 십분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사랑의 고백에 대한 응답도 그렇지만 '다정'이야말로 사람을 감동케 한다. 이성으로부터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다정한 질문을 받으면 나 자신 감동해서 울 것 같다.

지금은 남과 여가 만나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인 시대가 아니다. 결혼정보회사들이 성업중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남과 여가 자연스럽게 만나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을 알아가고 사귀고 결국 결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 속에서의 두 연인은 남들이 알면 곤란한 사랑을 하고 있다. "달 없는 밤도 없는" "방도 없는" 어두운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달도 없는 어두운 공원이니 '방房'도 없고 '방도方途'도 없다. 이런 은밀한 곳에서 사랑을 나눌 때마다 한 사람이 "조금 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두 사람 다 너무 어린가,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는가, 다 너무 노인인가. 신분상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시에는 힌트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사라질 때 꼭 말해줘야 해/그런 당부를 한다 해도 말없이 사라지겠지". 이를테면 한쪽이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예비돼 있는 사랑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 사랑을 들키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시를 읽으니 현인이 부른 '꿈속의 사랑'이라는 가요가 생각난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로 시작되는 노래가 그랬듯이 이 시도 성사될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왜 문학작품 속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혹은 이뤘으나 산산조각이 난 사랑을 다루는 것일까. 「폭풍의 언덕」 「안나 카레니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보바리 부인」…. "아무래도 이 사랑을 들키고 싶지가 않아"가 계속 뇌리에서 맴돈다. 죽기 전에, 한번은 고백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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