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면 끝이다”…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 해리스-트럼프 총력전

이본영 기자 2024. 10.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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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 르포
‘미국 대선 족집게 카운티’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 카운티의 한 주택 앞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러닝메이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홍보하는 팻말이 놓여 있다.

“그냥 ‘헬로’라고 인사나 하지 다른 얘기는 일절 안 해요.”

미국 대선(11월5일)을 한달여 앞둔 지난 1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노샘프턴 카운티. 주택가를 차로 지나던 기자의 눈에 독특한 광경이 들어왔다. ‘해리스-월즈’라고 쓴 팻말을 세운 집과 바짝 붙은 이웃집에 ‘트럼프’라고 쓴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홍보하는 팻말이 놓인 집의 이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미국에서 지지 후보 이름을 내거는 것은 흔하지만 옆집끼리 서로 보란 듯 맞수들 이름을 나란히 내세우는 것은 이례적이다. 궁금한 마음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자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집주인 주디스 델투바는 자신을 “트럼프 최대의 적”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그는 이웃까지 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며 정치 양극화의 씁쓸한 풍경을 전했다.

노샘프턴은 ‘벨웨더(bellwether: 선도, 전조) 카운티’, ‘백악관 가는 길’로 불린다. 1912년 이래 1968·2000·2004년을 빼고는 이곳에서 승리한 후보와 대선 승자가 같았기 때문이다. 족집게 카운티란 말이다.

2016년에는 공화당 후보를 택했다가 2020년 민주당으로 돌아선 곳은 펜실베이니아의 67개 카운티 중 노샘프턴, 또 다른 족집게로 불리는 이리 카운티 2곳뿐이다.

올해도 ‘법칙’이 지켜질지를 많은 이들이 주목한다. 델투바는 해리스 부통령이 노샘프턴에서 이기리라고 확신한다며 “사람들이 트럼프의 범죄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유소에서 만난 회계사 필 샌토어는 “난 트럼프만 아니면 누구든 찍는다”면서도 “그가 이길 것”이라며 비관적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이웃이 ‘나라가 잘못 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물가와 경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점 직원 조애나 해링은 2016·2020년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택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을 택할 가능성도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노샘프턴 카운티에 있는 베슬리헴스틸 옛 공장. 한때 세계 2위 철강 업체였던 베슬리헴스틸 공장의 녹슨 외관이 러스트벨트를 상징하는 듯하다. 지금은 문화 공간 등으로 쓰인다.

뚜껑을 열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노샘프턴만이 아니다. 이곳이 속한 펜실베이니아주는 ‘경합주들 중의 경합주’다. 펜실베이니아는 미시간·위스콘신과 함께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의 3대 경합주를 구성한다.

3개 주는 민주당 텃밭을 뜻하는 ‘블루(민주당 상징색) 월’의 일부였지만 ‘소외된 백인들’이 2016년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2020년에는 다시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 손을 들어줬다.

펜실베이니아가 후보들 속을 가장 태우는 경합주가 된 배경에는 대서양과 면했으면서도 애팔래치아산맥이 넓게 덮고 있는 경제·지리적 특성이 있다. 동쪽(필라델피아)과 서쪽(피츠버그)에는 대도시가 있으나 중앙부는 세계화·정보화 물결에 합류하지 못했다. 주요 산업이던 철강과 석탄 산업은 쇠락했다.

노샘프턴이 펜실베이니아의 축소판이라면 펜실베이니아는 미국의 축소판이다. 소득, 교육 수준, 인종 다양성도 미국 평균에 가깝다.

주 내부의 정치적 단층선 역시 미국 전체를 투영하거나 그보다 심하다고 할 만큼 뚜렷하다. 승부 예측이 몹시 어려운 노샘프턴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의 경우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게 몰표(득표율 81.21%)를 줬다.

1일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대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 켄지 클라크는 “우리 가족은 트럼프가 되면 뉴질랜드로 이민 가자고 얘기할 정도”라며 “혐오의 정치”를 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반면 산악 지대의 풀턴 카운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전 펜실베이니아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85.41%)을 기록한 곳이다. 풀턴은 필라델피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여서 미국 면적을 고려하면 지척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2일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 3개를 지나 도착한 이곳은 비탈에 옥수수와 콩을 키우는 ‘다른 세계’였다. 주민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이유로 “그냥 좋아서”, “난 원래 공화당 쪽이니까”, “성서를 따르는 사람이니까” 등 여러 이유를 댔다.

숀 라이언스는 “물가가 너무 뛰어 식료품과 약을 살 돈이 부족하다”며 민주당 행정부를 비난했다.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는 티나 리더는 “이곳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 때부터 찍었으니까 후보가 누구이든 공화당을 지지한다”며 “배운 사람들까지 그러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세가 압도적인 펜실베이니아주 풀턴 카운티의 한 주택에 그를 응원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난하는 팻말이 걸려 있다.

이런 유권자들이 만들어내는 펜실베이니아 판세는 초박빙이다. 1일 발표된 에머슨대 여론조사 결과는 양쪽이 48% 동률이다. 이곳은 선거인단 수가 19명으로 경합주들 중 가장 많다는 점에서도 결정적 가치를 지닌다.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공화당 우세 주들의 선거 결과가 2020년과 같다고 가정할 때 남부 선벨트 경합주 4곳(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네바다)을 내주더라도 북부 러스트벨트 3개 주를 지켜내면 백악관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도시 지역인 네브래스카주 의회 제2선거구에 배정된 1명(네브래스카·메인주는 승자독식이 아니라 의회 선거구별로 선거인단 배정)도 챙겨야 하는 조건이 붙는데 그곳에서는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그러면 딱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전체 538명)을 확보한다.

펜실베이니아를 내주는 대신 여론조사에서는 다소 불리하게 나오는 선벨트 경합주에서 이길 수도 있지만 최소 2개 주를 확보해야 한다. 애리조나(11명)와 네바다(6명)는 둘을 합쳐도 펜실베이니아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결국 펜실베이니아를 놓치면 가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만4천여표, 바이든 대통령은 8만여표 차이로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몇만표가 전체 승부를 좌우할 수도 있는 곳을 놓고 양 캠프는 물론 유권자들의 긴장감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달 1~20일 민주당은 이곳에서 다른 주들보다 훨씬 많은 5천만달러(약 663억원), 공화당은 2900만달러를 광고비로 썼다. 2020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배 이상 쏟아부었다.

선거 한달 전까지도 남아 있는 부동층 때문에라도 양쪽은 더 총력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한 회사원은 “두 후보 모두 지적이지 못하고 정책도 실질적이지 못하다”며 “이곳에서는 내 한표가 더욱 중요해 계속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필라델피아·노샘프턴·풀턴/글·사진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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