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슬로베니아산 와인 ‘마레산토’의 독특한 해저 숙성법

5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마레산토 팝업 현장. 아드리아해 수심 30m에서 1~2년의 숙성을 거쳐 생산된 마레산토 와인 병에 굴 껍데기가 달라붙어있다. (사진=박재형 기자)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저마다 깊은 풍미를 내기 위해 고유의 숙성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육지에 발 딛은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통에 저장돼 숙성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마레산토는 조금 다른 방식을 고집한다. 바로 해저 숙성을 통해 특유의 짠 내음을 덧입히는 것이다. 와인의 본고장 이탈리아도, 프랑스도 아닌 슬로베니아에 뿌리를 둔 마레산토가 애호가들로부터 ‘바다의 보물’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 5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선 마레산토 팝업 행사가 한창이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굴껍데기와 따개비가 화석처럼 붙어있는 병이었다. 1~2년에 걸친 해저 숙성기간 동안 바다 생물이 유리병에 달라붙는 탓에 마레산토 각각의 병은 모두 하나뿐인 자연산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와인애호가 A씨는 “병마다 모두 느낌이 달라 보는 재미, 마시는 재미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마레산토 와인은 2단계에 걸쳐 생산된다. 먼저 알프스산맥 인근의 고리슈카 브라다(Goriska Brda) 언덕 와이너리에서 2년 동안 오크통에 담기고, 이후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위치한 아드리아해에서 재숙성을 거친다. 이때 최대 2년간 수심 30m의 해저에 잠긴 각각의 병은 서로 다른 원동력을 이끌어내며 섬세한 맛과 향을 갖게 된다는 게 마레산토의 설명이다. '바다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는 슬로베니아의 잠언을 마레산토는 알콜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와인을 품은 해저에선 잔잔한 해류가 발생한다. 바다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 병들이 지속적으로 출렁이는 과정에서 병 내부엔 섬세한 기포가 형성된다. 동시에 풍부한 미네랄이 코르크 마개를 통해 스며들어 깊은 풍미를 완성한다. 실제 시음해 본 결과 묘한 과일 향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버블이 생명력 있게 오래도록 지속됐다.

김정민 마레산토 디렉터는 “마레산토 와인은 빛과 산소가 완전히 차단된 해저에서 일정한 압력을 받으며 숙성된다”며 “지속적인 너울링으로 인해 아로마와 미네랄의 풍미가 더 진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5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마레산토 팝업 현장 전경. (사진=박재형 기자)

마레산토가 풍부한 풍미와 맛을 내는 배경으로 숙성 방식 외에 포도를 빼놓을 수 없다. 포도농장이 위치한 고리슈카 브라다 언덕은 지중해의 따뜻한 공기와 알프스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특성이 있는데, 이곳의 토양과 지리 조건으로 형성되는 미세기후는 농산물의 당도와 산도, 풍미를 극대화한다. 본질적으로 주재료인 포도의 품질이 뒷받침돼기 때문에 해저 숙성 역시 진가를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김 디렉터는 “고리슈카 브라다의 토양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라며 "알프스의 차가운 바람이 아래로 내려와 깔리고, 지중해 따뜻한 바람과 만나 적정 기후를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으로 정성스럽게 수확한 포도 중에서도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와인의 재료로 쓰인다”고 덧붙였다.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