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유통가 오너들의 ‘쇼’...그들이 현장경영 나선 이유

“가장 빠르고 바른 답은 현장에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이 말은 올해 첫 현장 경영에서 던진 메시지이자, 최근 유통업계 오너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올해 들어 유통업계 오너들의 현장 경영 행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매장 방문과 신사업 점검, 해외 전시회 참석까지 형식은 다양하다. 겉으로 보면 ‘보여주기식 행보’, 다시 말해 하나의 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돼 온 유통업계의 위기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유통 환경은 사실상 180도 바뀌었다. 오프라인 소비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온라인·플랫폼 중심 소비는 구조적으로 고착됐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소비 여력은 줄어든 반면, 판촉 비용과 인건비, 임차료 등 고정비 부담은 커졌다. 매출은 버티는 듯 보이지만 이익률은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구조다. 다수 유통기업이 내수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기존의 성장 공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때 편의점 업계의 주요 화두였던 점포 수 경쟁은 의미를 잃었다. 점포 확대만으로는 성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고, 대형 프로모션과 가격 경쟁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알리와 테무 등 글로벌 플랫폼의 초저가 공세로 가격 주도권은 뺏기고, 오프라인 유통은 차별화와 체질 개선이라는 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책상 위 보고서와 회의만으로는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인식이 확산된 배경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현장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신세계는 외형 확장보다는 매장별 성과와 운영 구조를 직접 점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정 회장이 스타필드 매출 1위 점포와 지역 밀착형 매장을 잇달아 찾은 것도 오프라인 경쟁력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면 CJ는 올리브영을 핵심 축으로 키운 이후, 웰니스 신사업이 확장 가능한 모델인지 검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재현 회장이 개점 전 ‘올리브베러’ 매장을 직접 찾은 것도 단순 격려가 아니라 차세대 성장 축으로서의 가능성을 오너가 직접 판단하겠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오너들의 현장 경영을 두고 실적 부진을 가리기 위한 ‘보여주기식 쇼’라고 말한다. 완전히 틀린 평가는 아니다. 당장 오너가 매장을 찾는다고 해서 매출이 오르거나 실적이 반전되지는 않는다. 현장 방문 자체가 해법은 아니다. 다만 위기 국면에서 오너의 부재는 조직과 시장에 더 큰 불안을 남긴다. 전략 수정과 투자 판단의 무게가 커질수록 최종 책임자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현장에 나왔다는 사실이 아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가 실제 전략 변화와 투자 결정, 조직 운영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다. 그 연결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현장 경영 역시 결국 ‘쇼’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유통가 오너들의 현장 행보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이제 다음 수가 필요하다.

최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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