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현금화 기간…인도 당일, 미국·중국 다음날, 한국만 ‘이틀 후’

목요일 주식 매도 땐 나흘 간 손발 꽁꽁…李대통령·전문가들 “결제 시스템 효율화 시급”
[사진=연합뉴스]

주식 매도 후에도 거래일 이틀 후 매매대급이 지급되는 현행 주식 예수금 제도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개인 투자자들의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역시 주식 매매대금 결제 주기를 단축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현재 인도는 당일 결제, 미국은 다음 영업일 결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내 주식 팔았는데 왜 돈 바로 안주나”…李대통령도 때린 구시대적 주식 예수금 제도

직장인 이규환 씨(30·남)는 최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식 매매대금 결제 시스템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이 씨는 평소 자산 대부분을 주식으로 보유해 왔는데 급전이 필요해 주식 일부를 매도했음에도 현금 출금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식 매매대금 지급일이 영업일 기준 2일 뒤라는 사실을 인지하곤 있었지만 피해자가 합의금 지급 기일을 앞당기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그는 합의금을 치르기 위해 별도의 은행권 대출을 이용해야 했다. 이 씨는 “은행 예·적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반면 국내 주식은 매도 후에도 며칠간 자산을 온전히 점유할 수 없는 구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특히 주말이 낀 목요일에 매도할 경우 실제 현금을 쥐기까지 무려 나흘 간이나 자산이 동결되는 셈이다 보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 2023년 인도 증권거래위원회는 자국 주식시장 내 모든 상장 종목의 매매대금 지급 시기를 기존 ‘T+2’에서 ‘T+1’로 단축했다. 지금은 일부 종목에 대해서는 당일 지급을 시행 중이다. 사진은 인도 뭄바이 증권거래소(BSE) 건물.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선 특정 주식을 매도한 날로부터 2영업일에 후에야 판매 대금이 지급되는 ‘T+2’ 결제 방식이 일반화 돼 있다. 주식을 판 뒤 해당 금액으로 즉시 다른 주식을 사는 ‘재투자’는 가능하지만 현금을 인출하려면 반드시 2영업일을 기다려야 한다. 거래 데이터를 대조하고 증권사 간 주고받을 차익을 정산하는 물리적 시간과 외국인투자자와의 환전 이슈, 시차, 자금 이동 등을 고려했을 때 거래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행된 과거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글로벌 주요국들은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결제 주기를 앞당기는 추세다. 가장 앞서나간 국가는 인도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는 2023년부터 자국 증시에 상장된 모든 종목의 매매대금 지급 시기를 기존 ‘T+2’에서 ‘T+1’로 단축시켰다. 2024년 3월부터는 일부 대형주를 대상으로 ‘T+0’(당일 결제) 시스템을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는 ‘T+0’ 적용 종목을 점진적으로 확대 중이며 향후 모든 종목에 대해 당일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T+1’ 시스템을 적용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024년 5월부터 매매대금 결제 주기를 기존 ‘T+2’에서 ‘T+1’으로 줄였다. 2021년 ‘게임스탑 사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주식 거래 시스템상 매매 체결 시점과 실제 대금 지급 시점 사이에 시차가 발생하면 증권사는 그 공백기 동안의 거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소에 막대한 자금을 ‘증거금(담보)’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거래량이 폭증하자 일부 증권사들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증거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거래를 일시 중단했다.

이후 미국 금융당국은 이러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주기를 하루로 줄여 증권사의 담보 부담을 낮추고 시스템적 취약성을 제거했다.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이었던 게리 겐슬러는 “현대 기술 수준에서 이틀씩이나 결제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 역시 미국 시장과의 동조화를 위해 2024년 5월부터 미국과 동시에 ‘T+1’ 결제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선 북아메리카 전체가 하나의 실시간 결제 권역으로 묶이면서 자산 유동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주식 예수금 결제 주기 현황.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유럽 국가들 또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는 2023년부터 ‘T+1’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 중이다. 특히 영국 금융감독청은 늦어도 2027년까지 매매대금 지급 주기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중화권 국가들도 ‘T+1’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증시의 경우 주식을 매도하면 다음날 인출이 가능하다. 홍콩증권거래소 역시 지난 17일 결제 주기를 기존 ‘T+2’에서 ‘T+1’로 단축하는 운영 모델 안을 제시하고 시장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식 매매대금 결제 시스템 단축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오늘 주식을 팔았는데 돈은 왜 모레 주냐는 이야기가 있다”며 “필요하면 조정을 하는 의제 중 하나로 검토해 보면 어떨까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결제 시스템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국들이 결제 주기를 단축하는 것은 자본의 회전율을 높여 주식시장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해 투자자 편익을 극대화하고 시장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본의 흐름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 이틀이나 자금이 묶이는 방식은 구시대적인 관행이다”며 “결제 시스템 선진화는 단순한 투자자 편의 증진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인프라 혁신이다“고 강조했다.

글=김성원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매매대금 결제 주기는?
A. 주식을 매도한 날로부터 영업일 기준 2일 뒤에야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특히 목요일의 경우 주식을 팔면 주말을 지나 다음 주 월요일에야 돈을 찾을 수 있어 급전이 필요한 투자자의 자금 운용에 큰 제약이 따르고 있다.

Q2. 미국이 증시 결제 주기를 'T+1'로 단축하게 된 이유는?
A. 2021년 발생한 '게임스탑 사태'가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거래량이 폭증하자 'T+2' 시스템 하에서 증권사들이 부담해야 할 증거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일부 증권사가 거래를 중단하며 시장 혼란을 발생했다. 이에 미국 당국은 리스크를 차단하고 시스템의 취약성을 제거하기 위해 2024년 5월부터 결제 주기를 하루로 단축시켰다.

Q3.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결제 시스템 현황은?
A. 인도가 세계 최초로 2023년에 'T+1'을 전면 도입했고 현재는 일부 대형주를 대상으로 'T+0(당일 결제)'까지 시범 운영 중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이미 'T+1'을 시행하고 있으며 홍콩과 유럽 국가들도 결제 주기를 단축시키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Copyright © ⓒ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