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장비 하나도 세심하게…연령 문턱 없는 ‘모두의 일터’로

황보연 기자 2025. 10. 2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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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
⑱고령친화 일터는 왜 필요한가
생산인구 늙어가는데 고령자에 위험한 일터
연령 고려한 위험성 평가·업무 배치 있어야
지난 8월22일 케이알엔지니어링의 시니어 직원 박준흠씨가 컴퓨터에 설계 도면을 띄워놓고 업무를 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2007년 독일 딩골핑의 베엠베(BMW) 공장은 ‘2017 인체공학’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당시 39살이었던 직원 평균 연령이 10년 뒤인 2017년 47살로 올라갈 것이란 예측에 따라, 작업공정을 재설계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에 나선 것이다. 시력 저하에 대비해 확대경을 설치했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나무 바닥을 깔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도록 높이를 조정했다. 이를 통해 베엠베는 연간 생산성을 7% 향상시켰고 결근율도 동종업계 평균보다 낮췄다고 한다. 일찌감치 고령화에 대비해온 유럽 국가들은 최근 고령자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노동시장 참여 유도’에서 ‘건강한 노동수명 연장’으로 바꾸고 있다.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선박·항만시설 등의 설계와 감리를 맡는 케이알(KR)엔지니어링 직원 90명 중 32명은 60살 이상 고령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층의 선호도는 대기업에 견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신 퇴직자의 구직 수요는 갈수록 높아져온 영향이다. 관공서 입찰을 수주하려면 통상 10년 이상 경력을 필요로 한다. 회사로선 오랜 경험과 숙련 기술을 갖춘 경력자를 고령이라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8월22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장경식 케이알엔지니어링 대표는 “건강 상태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해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고 했다. 때마침 장 대표는 고령 직원 2명과 업무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조선업체에서 일하다 퇴직한 박준흠(62)과 이 회사에서 정년을 마친 뒤 재고용된 윤호상(61)이었다.

케이알엔지니어링은 2022년 고령자친화기업(열쇳말)으로 선정된 뒤 정부 보조금을 받고 근무환경 개선을 추진해왔다. 우선 사무실의 형광등부터 발광 다이오드(LED)로 전부 교체했다. 시력은 평형 감각과 함께 연령에 따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신체 기능이다. 고령일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실내외 조명 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가 떨어진다. 준흠씨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설계 도면을 그리는 업무 특성상 눈의 피로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엘이디 조명을 쓰면 빛이 밝고 고르게 분포돼 사물의 명확한 식별을 돕는다. 24인치로 확대한 모니터 2대를 사용하도록 하고 직원 간에 공유하는 매뉴얼 자료의 활자 크기도 종전보다 키웠다.

설계 업무만 하는 준흠씨와 달리 호상씨는 현장 감리도 나간다. 그럴 때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 회사는 기존보다 30% 이상 무게를 줄인 초경량 제품을 새로 구매했다. 무게를 줄여야 장시간 착용에도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에 쓰던 것보다 훨씬 가볍고 물에 빠지면 자동으로 팽창되는 방식이어서 편의성도 개선됐다”고 했다.

장 대표는 “전체 직원의 30%가 고령이다 보니 임직원 건강 관리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고 했다.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에 고령자를 위한 선택 항목을 회사 부담으로 추가했다. 치료비 지원을 위해 단체 상해보험에 가입했고 업무 부담이 건강에 무리를 주지 않는지 수시로 살핀다. 출퇴근 시간은 3가지 유형 중 본인이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근무환경 개선은 고령 직원을 위해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젊은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였다고 장 대표는 전한다.

두 사람은 몇살까지 일하고 싶을까. 준흠씨는 “5~6년 정도는 더 일하고 싶다”고 했고, 호상씨는 “청년 채용이 위축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 회사의 최고령 직원은 69살로 모두 3명이 일하고 있다.

사진은 KR엔지니어링의 시니어 직원 윤호상씨가 현장 감리를 나가기 전 초경량 구명조끼를 착용한 모습.

고령 노동자 특성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일터에서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나이는 몇살부터일까. 고령자고용촉진법상 50~54살을 준고령자, 55살 이상을 고령자로 구분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50살 이상 장년 노동자는 시각과 청각, 촉각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이고 근력과 순발력,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일을 하다가 생길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비하려면 순발력이 필요한데, 60살 전후가 되면 30살 때보다 32% 정도 저하된다.

작업생리학에서는 ‘하루 작업이 끝나고 피로가 없는 상태’를 적절한 작업 부담으로 본다. 통상 육체적인 작업능력은 20~25살에 최대치가 되고 1년마다 1~2%씩 감소해 65살이 되면 25살 대비 70% 수준으로 떨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루 노동의 최대 강도는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다.(장안석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 연구원)

일터에서 다치거나 숨지는 고령 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이런 특성을 배려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산재를 인정받은 사망 노동자 2098명 가운데 60살 이상 고령자가 1107명(52.8%)에 이른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55살 이상 노동자의 산재 현황(2017~2021년)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추락이나 붕괴, 끼임 등 재래형 산재 비중이 약 70%였다. 또 감전이나 폭발, 화재 등 사업장 내 위험에 따른 산재 비중은 2017년 9.9%에서 2021년 13.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5살 미만 연령대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2023년 한국노동연구원은 고령 비중이 다수이거나 작업 부하 및 재해 위험이 비교적 높으면서 고령 비중이 30% 이상인 직종에 대한 면접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보면, 사업장 자체적으로 고령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거나 고령자 고용 인원과 근무형태, 업무 적응도, 업무 고충 등을 별도로 파악하고 있는 곳은 전무했다. 박 연구위원은 “취업을 원하는 고령층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둬왔기 때문에 ‘고령친화적 근무환경’ 조성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다”고 했다. 한 예로, 자동차 제조업체의 경우 표준작업시간을 산정해 공정을 운영하는데 연령에 따른 고려는 없었다. 원래 책정된 시간에서 연령대에 따라 1.2~3배로 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2년 ‘고령 근로자의 작업에 관한 안전 지침’을 수립한 데 이어 2016년 15개 직종에 대한 ‘고령 근로자 작업환경 개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하지만 강제규정은 아니고 권고사항일 뿐이다. 케이알엔지니어링처럼 고령친화 근무환경 조성을 약속한 기업에 비용 지원을 하고 있지만 고령자를 다수 고용한 일부 중소기업에 국한된 사례다. 그나마도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낙후된 시설 전반을 개선하는 투자와 구분이 모호한 측면도 있다. 연령을 고려한 위험성 평가와 업무 배치, 작업관리, 안전보건 조처 등이 정교하게 짜여야 하지만, 아직 일터에선 고령친화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

고령자 불안정 고용이 산재 위험 높인다

열악한 일자리에 고령 노동자 비중이 높다는 점은 산재 위험을 높이는 또다른 요인이다. 실제로 2017~2021년 55살 이상 고령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비사망 사고 기준) 발생률은 비고령 노동자의 약 2.5배에 이르는데, 주로 건설업(36.0%)과 단순노무직(45.0%), 일용직 고용(44.0%)에 쏠려 있었다. 관련 연구에 참여한 김양호 울산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고령자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위험이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 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고령 노동자의 신체적 기능 저하와 부주의에서만 사고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고령친화 일자리에 대해 비교분석한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미국에 견주면 고령친화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딘 편”이라며 “한국에서는 대기업 일자리가 고령친화적인데 여기서 고용이 늘지 않는 반면 질 낮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령친화 일자리는 물리적 작업능력 저하에 따른 고려뿐 아니라 업무 속도와 자율성, 근무시간 유연화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 교수는 “연금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고령자들이 작업환경을 제대로 따지기보다는 생계를 위해 열악한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도 짚어볼 대목”이라고 했다.

고령친화 일자리는 다른 연령대에도 좋은 일자리가 된다. 인구감소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려면 연령 문턱을 없앤 ‘모두를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 연구위원은 “고령화 대응을 위한 첫번째 원칙은 작업부하를 전체적으로 낮추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라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장벽 없이 이용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산업 현장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전체 취업자 평균 나이는 2022년 기준 46.8살이고 2035년에는 50.2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대한상공회의소 SGI의 추정) 고령자를 비롯해 취약층 일부를 배려한다는 수준의 제도로는 생산인구의 고령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열쇳말: 고령자친화기업

보건복지부가 60살 이상 고령자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지정하는 기업이다. 분기마다 공모로 선정한다. 전년도 말 직원의 5%(최소 5명) 이상 고령자를 둔 기업 중에서 최소 5명 이상 고령자를 추가 고용하려는 기업 등이 지원 대상이다. 고령친화 근무환경 조성과 인건비 등에 최대 3억원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2011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총 457곳이 고령자친화기업으로 지정됐다. 케이알엔지니어링도 이를 통해 1억7500만원을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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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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