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카드를 물던 시대’가 남긴 참사, LG카드는 누구 때문에 사라졌나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신용카드 규제 완화 정책이 예기치 못한 금융 대재앙으로 변모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은 초기에는 소비 진작과 지하경제 축소라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지만, 2003년 경제활동인구 6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372만 명의 신용불량자 발생이라는 이 사태는 단순한 금융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구조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 위기의 씨앗, 1999년 규제 완화 정책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경기 부양의 핵심 도구로 삼았다. 1999년 2월 카드사의 신용판매 취급 비중 규제를 폐지했고, 같은 해 5월에는 월 70만 원이었던 현금서비스 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해 신용카드 사용을 세제적으로 장려했으며, 심지어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도를 시행하면서 최고 1억 원의 상금을 걸어 소비자들의 카드 사용을 부추겼다.

카드사들은 이러한 정책 기조 속에서 주부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했다. 신용조사나 소득 증명 없이도 사은품과 현금을 나눠주며 카드 신청을 받아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신용카드 발급 장수는 1999년 3,900만 장에서 2002년 1억 488만 장으로 폭증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는 1999년 1.8장에서 2002년 4.6장으로 늘어났다.

신용카드 사용액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8년 63조 6천억 원에서 2002년 622조 9천억 원으로 약 10배 증가했다. 특히 현금서비스를 통한 신용대출의 급증이 심각했다. 1999년 48조 원이었던 카드사들의 현금대출 규모는 2002년 358조 원으로 일곱 배나 증가했다.

>> 승승장구하던 정책의 미묘한 신호

초기에는 정부의 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민간소비는 1999년 12%, 2000년 9.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2001년 국내 주요 7개 카드사의 순이익이 2조 5천억 원에 달했다.

LG카드는 특히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쳤다. 당시 LG그룹의 대부분 계열사들이 삼성그룹에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카드사만은 업계 1위를 차지했다. LG카드는 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내실 경영보다는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에만 몰두했다. 반면 삼성카드는 2002년 말 위기 신호를 감지하고 상황 파악에 나서 내실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위험한 신호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연체율이 2001년 7.7%에서 2002년 8.6%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신용불량자 수도 2000년 186만 명에서 2001년 245만 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는 기간경과 효과(seasoning effect)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가입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는 낮게 유지되던 연체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뒤늦게 폭증하는 패턴이었다.

>> 정책의 반전: 2002년 말 규제 강화

정부는 2002년 말 뒤늦게 위기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현금서비스 규제를 재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임계점을 돌파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현금서비스로 빚을 돌려막던 채무자들이 새로운 카드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연쇄적으로 파산했다.

신용불량자는 2002년 264만 명에서 2003년에 급증해 372만 명에 달했다. 2003년 한 해만 108만 4천 명이 신용불량자로 추가 등록되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전체 신용불량자 372만 명 중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가 239만 명으로 60% 이상을 차지했다.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극한에 달했다. 2003년 카드사의 실질 연체율은 28.3%에 이르렀다. LG카드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2003년 한 해 LG카드의 누적 적자는 5조 5천988억 원을 기록했다. LG카드는 자력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판정받았다.

>> 카드사 붕괴와 업계 재편

LG카드의 위기는 유동성 문제로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카드채 신용평가 등급이 연속으로 하향 조정되자 카드사들의 유동성이 크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 21일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LG카드의 현금서비스가 오후 2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중단되었고, 이튿날에도 오후 3시 30분부터 다시 중단되었다. 이는 한국 금융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4년 1월 LG카드는 산업은행의 단독 관리 체제로 들어갔다. 2006년 신한금융지주가 LG카드를 인수했다. 외환카드와 우리카드도 타 금융기관에 흡수되었다.

>> 경제 전반에 미친 장기적 충격

2003년 신용카드 부실사태는 한국 경제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자영업자는 2003년 말까지 1년 반 동안 30만 명이 사라졌고, 같은 해 경제성장률은 3.1%로 추락했다. 민간소비가 붕괴되면서 한국 경제는 수출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로 고착되기 시작했다.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2004년 정부는 개인워크아웃제도와 개인회생제도를 활성화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용사면은 없다"는 원칙 하에 구제 프로그램이 시행되었고, 2004년에 신용불량자가 361만 명까지 기록된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신용불량자가 300만 이하로 줄어들면서 약 60만 명의 신용이 회복되었다.

>> 카드 대란의 교훈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책의 선의(善意) 자체보다는 실행 과정에서의 무분별함과 감시 부재였다.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카드사들의 경쟁 과잉이 겹치면서 대재난으로 발전했다. IMF 위기 당시와 달리 이 카드 대란은 일반 국민들의 실질적인 소비 능력을 무시한 정책의 산물이었다.

LG그룹은 이 사태로부터의 회복에 수년이 걸렸다. LG카드의 부실로 인해 LG는 계열사 분가와 매각 등 대규모 구조 조정을 감행해야 했다. 재계 2위였던 LG는 현재 4위로 순위가 내려갔다. 국민들이 겪은 신용 채무의 고통과 경제 기반의 흔들림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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