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이도 넘어선 로카티

이 사진을 보라. ‘ROKA’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일반 여성들과 연예인들의 모습. 대한민국 육군(Republic of Korea Army)을 지칭하는 이른바 로카티, 요새 길거리 나가면 어디서나 쉽게 보인다.

깔깔이를 비롯한 군대용품, 편하고 실용적이라 집에서 입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전 세대에 걸쳐 인기를 끈 적은 처음 아닌가 싶은데.유튜브 댓글로 ‘로카티 유행은 어떻게 시작됐을까’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로카티 유행의 시작을 찾기 위해 일단 국군 복지단에 전화를 걸었다. 국군 복지단은 국방부 직할부대로, PX 물품 관리 등을 담당한다.

취재를 해보니, 군 PX에서 로카티를 팔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나우코퍼레이션’이라는 군 용품 생산업체가 2014년 입찰에 참여해 복지단 심의를 통과한 이후부터다.

요 로카티는 검은색 바탕에 왼쪽 어깨에 ‘R.O.K.A’라 적혀있고, 왼쪽 팔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등에는 ‘KOREA ARMY’라는 문구도 보인다.

그러다 2023년 ‘나라물산’2025년 ‘네오팩토리’라는 회사 제품이 추가돼 현재 군 내부에서 판매중인 검은색 로카티는 총 3가지 종류다. 사실 디자인은 비슷비슷하고, 세 제품 모두 1만 원대 초반에 구입 가능하다.

요 로카티 3개는 전국 군 PX 어디에서나 살 수 있다. 하지만 군부대 내부에 마트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군인이나 군 관계자만 구입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이 3개 로카티의 군 판매량은 총 32만 장. 그러니까 순수 군인들이 구입한 수량이 이 정도라는 거다. 일단 싸고, 운동이나 작업할 때 막 입기 편하니까 젊은 군인들에게 인기가 높을 수밖에.

사실상 로카티의 선구자인 나우코퍼레이션 대표님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의 편의를 위해 원단이나 디자인을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얘기.

[한상훈 나우코퍼레이션 대표]

젊은 사병들이 단색 티셔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고 (판매 시작한) 당시에는 그 군부대 주변에서 판매되는 티셔츠도 그렇고 대부분 다 중국 싸구려 폴리에스테론 티셔츠가 주력이었거든요.
저희가 쿨 맥스라는 더 업그레이드된 원사로 납품을 하고 있고요. 약간 사명감 비슷한 것도 있었고요. 우리나라는 징병제기 때문에 그런 아이(군인)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가지고 시작을 하게 됐고요

전역한 군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요 로카티, 입으면 시원하고 착용감도 좋다고 한다. 나우코퍼레이션은 혁신 의류 섬유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인 라이크라사의 정품 ‘쿨맥스’라는 원단을 쓰고 있는데, 땀이나 물 흡수가 용이하다.

그런데도 가격은 1만 원대 초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장병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결정이다.

[한상훈 나우코퍼레이션 대표]

최대한 저희가 다른 군더더기를 없도록 관리를 해서 최소한의 마진으로 2014년 당시만 해도 사병들 월급이 참 적었었거든요. 그 사정을 고려해서 저희도 나름대로 마진 억제하고 많이 누르고 보편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

그러니까 깔끔한 디자인수분 흡수도 잘되고, 가격까지 착한 로카티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편함을 잊지 못한 군인들이 전역한 이후에도 사회에서 요 티셔츠를 계속 입고, 그들의 여자친구나 여동생, 가족까지 요 티셔츠의 매력에 빠지면서 로카티 유행이 본격화된 것.

래퍼 빈지노가 이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세계적인 그룹 BTS의 팬클럽 이름이 하필 또 ARMY인 것도 로카티 대란에 한몫했다.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인터넷에 로카티를 쳐보면 수십 개가 넘는 업체가 비슷한 디자인의 로카티를 팔고 있다. 근데 로카티의 시초 혹은 정품이라 할 수 있는 나우코퍼레이션 제품은 안 보인다.

나우코퍼레이션 정품 로카티는 군인을 대상으로 디자인되고, 제작됐기 때문에 군부대 주변 마트나 군 내부에서만 판매를 하고 있어서다.

그런 와중에 시중에선 군에서 판매 중인 3개의 로카티 디자인을 베낀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로카티 디자인은 특허 등록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육군을 뜻하는 ‘ROKA’ 문구를 활용한 디자인은 개인 기업의 특허가 될 수 없다는 게 특허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값이 좀 싼 대신에 중국산 원단을 쓰고 중국에서 생산한 로카티가 많다.

보통 군 밖에서 구할 수 있는 사제제품의 질이 군 용품보다 더 높은데, 이 로카티는 요런 이유로 오히려 사제의 질이 떨어지는 희한한 풍경이 빚어지게 됐다.

그러니까 요 로카티, 싸다고 막 사지 말고 여러 조건을 잘 따져보고 쇼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로카티 열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