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20세기 로맨스

로맨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봄! 봄의 끝자락에서 발행하는 씨네아카이브 8번째 에피소드는 20세기 로맨스 영화 특집으로 준비해 봤다.

20세기 로맨스와 노라 에프론

'20세기 로맨스 영화'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가 있는데 바로 '노라 에프론'. 2016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 회자되며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발행인 역시 좋아하는 영화로 그녀의 작품을 여러 편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이자 감독이다.

(이미지 출처: Academy of achievement)

로맨스 영화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뻔하디 뻔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인데 노라 에프론의 작품에는 특유의 유머와 풍자, 세련되고 지적인 취향, 예리한 통찰력에서 나오는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단순히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깝다. 무엇보다 그녀의 로맨스는 리얼리티와 통찰력이 돋보이는 모던한 로맨스 영화가 대부분인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작이 모두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김혜리 평론가님은 노라 에프론의 작품에 대해 "세계의 영화사를 정리할 때 노라는 언급되지 않겠지만 미국인들이나 우리 개인이 소장하고 싶은 영화를 꼽을 때는 그녀의 영화가 선사한 추억 때문에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 했다. 노라 에프론의 영화를 볼 때면,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솔직함, 따뜻함, 유쾌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쩌면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 아닐까. 그중에서도 지금도 특정한 계절이 되면 다시 찾아보게 되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유브 갓 메일>을 소개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롭 라이너 감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우연히 알게 된 사이인 해리와 샐리가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며 밀고 당기는 썸을 지속하다 결국 연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뻔한 스토리지만 주연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 훌륭한 각본과 연출, 가을에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20세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하면 떠올리는 작품으로 발행인이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 TOP 5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뉴욕행 차를 나눠 타게 된 해리와 샐리.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명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하며 뉴욕에 도착한 후 짧은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다. 몇 년 후,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면서 또 한 번 재회하지만 역시 짧은 대화만 나눈 채 헤어진다. 이후 샐리는 오랫동안 만나 온 연인과 이별하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후 서점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뒤에야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남사친과 여사친으로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헤어졌던 연인의 결혼 소식에 슬퍼하는 샐리를 해리가 위로하다 뜻밖의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는데...

영화는 중간중간 노부부의 인터뷰 장면이 등장하는데 서로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이는 해리와 샐리로 두 사람의 인터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이자 줄거리를 명쾌하게 요약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내린 남사친과 여사친에 대한 정의를 들어 본 관객이라면, 영화 속에서 해리와 샐리가 친구가 된 순간부터 두 사람의 결말은 예상하지 않았을까.

해리(Harry):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싫어했어요.”
샐리(Sally): “서로가 아니라 내가 싫어했죠. 두 번째 만났을 땐 날 기억도 못 했잖아!”
해리(Harry): “아니야, 기억했어. 세 번째 만났을 때 친구가 됐어요.”
샐리(Sally):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어요.”
해리(Harry): “그러다가.”
샐리(Sally): “사랑에 빠졌죠.”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설정은 로맨스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이기에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능글맞고 재수 없는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해리를 연기한 '빌리 크리스탈'과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어리숙한 사랑스러운 샐리를 연기한 '맥 라이언', 두 사람의 연기가 진부한 소재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바꿔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는 주연 배우의 앙상블을 비롯해 의상과 소품 등 작품 곳곳에서 20세기 아메리칸 레트로 무드를 감상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데 20세기 로맨스 감성에 젖어보고 싶은 이들, 아직 로맨스 영화에 입문하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유브 갓 메일 (You've Got Mail)>, 노라 에프론 감독

<유브 갓 메일>은 익명으로 펜팔을 주고받던 남녀가 현실에서는 서로의 서점을 위협하는 라이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케미와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고전 명작 <모퉁이 가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했는데 원작에서는 서로 티격태격하던 직장동료가 알고 보니 펜팔을 주고받는 설정이었다면, <유브 갓 메일>에서는 서로 다른 서점을 경영하며 원수가 된 남녀가 호감을 갖고 메일을 주고받았던 사이로 바뀌었다. 원작의 감독인 에른스트 루비치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과 재치 있는 대사가 돋보이는 로맨스 영화의 대가로 그의 연출 방식은 ‘루비치 터치’로 불리며 이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영화 속에서 캐슬린이 운영하는 서점 ‘The Shop Around Corner’는 원작의 제목을 오마주 한 것!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조와 캐슬린은 인터넷으로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다. 'NY152'와 'SHOPGIRL'이라는 ID로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과 취미를 공유하고 뉴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조와 캐슬린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는데 캐슬린은 동네 모퉁이에 있는 아동 서점의 주인이고, 조는 맨해튼의 대형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으로 그는 캐슬린의 서점 근처에 새로운 체인점 오픈을 준비 중이었는데 폭스 북스는 박리다매와 편리한 서비스로 점차 캐슬린의 서점을 위협하고, 조와 캐슬린은 서로 펜팔 친구인지도 모른 채 앙숙이 된다. 조가 NY152라는 사실을 모르는 캐슬린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서점이 문을 닫을 처지가 되자 펜팔 친구 NY152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서로의 얼굴을 모른 체 메일을 주고받던 남녀가 알고 보니 으르렁대던 원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어진다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나 대형 서점이 동네 소형 책방을 문 닫게 만드는 설정이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스타벅스 등은 미국의 거대자본이 소상공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화두가 될 만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 <유브 갓 메일>은 원작을 비롯해 노라 에프론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아쉬운 평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영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 몽글몽글 설레게 하는 것만큼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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