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실물연계자산 토큰화(RWA)'에서 출발한 글로벌 흐름과 달리 조각투자를 제도권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토큰증권(STO)의 틀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RWA 논의가 이뤄졌다. 이에 법·하위법규 정비와 장외 유통 인프라가 구축돼야 국내 시장이 개화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정수현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5일 서울 강남구 해시드라운지에서 진행된 'RWA와 스테이블코인, 금융의 새로운 표준' 세미나에서 “외국에서 RWA로 부르는 것이 한국에서는 STO, 즉 조각투자를 시작으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조각투자는 2019년 카사코리아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 부동산 수익증권을 발행·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됐다. 조각투자는 하나의 자산이나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여러 투자자가 지분처럼 나눠 보유하는 구조로, 소액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후 2022년 금융위원회는 음악·미술품·한우 조각투자 상품에 대해 ‘증권성 판단’을 내렸다. 그 전까지는 규제 없이 발행되던 상품들이 법적 테두리로 들어온 것이다.
정 선임은 “뮤직카우가 발행하는 음악 증권의 경우 처음에 증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금융당국의 판단을 계기로 제도권에 편입됐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미술품과 한우 조각투자 역시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되면서 발행사들이 증권신고서를 작성하고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2023년 금융위는 이른바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전자증권법 기반의 발행·유통 규율 방향을 제시했다. STO는 이러한 조각투자 권리를 전자증권 체계로 발행·기록·유통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틀이다. 다만 관련 법안이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제도화 지연에 따른 현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정 선임은 “올해 2월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하위 법규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기존에는 샌드박스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발행에 정식 라이선스를 부여하겠다고 했다”며 “올해 5월에는 장외거래중개업 인가 단위를 신설해 유통시장까지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각투자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공동사업의 손익을 나누는 '투자계약증권'과 부동산·저작권 등 비금전자산을 신탁해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배분하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이다. 발행은 기업공개(IPO) 청약과 유사한 모집·배정으로, 유통은 증권사 앱에서 주식처럼 호가를 넣고 체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투자계약증권은 발행만 가능하고 유통은 막혀 있다.
최근 ‘한국STO거래’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며 유통 가능성이 열렸지만 아직은 개별 플랫폼의 자체 유통에 머물러 있다. 즉 본격적인 시장 활성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정부는 샌드박스에서 '라이선스 체계'로 전환하고 컨소시엄 기반의 단일·복수 장외유통 플랫폼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유통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다.
정 선임은 “한국 STO는 현재까지 1619억원 규모로 부동산이 60%를 차지한다”며 “유동성이 부족하고 가치평가 체계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 통과와 장외유통 인가가 뒷받침돼야 조각투자 중심의 한국형 STO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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