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 119년 만에 돌아온 ‘화성행궁’… 35년간 봉수당·우화관·별주 등 복원 [밀착 취재]
오상도 2024. 4. 23. 16:12
일제강점기 때 훼손됐던 경기 수원시의 화성행궁이 35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119년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일제시대 근대식 학교와 병원, 관청이 들어서며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졌던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부모인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를 향한 효심을 담아 1789년(정조 13년) 세운 궁실(宮室)이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 행차할 때는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르는 궁실로 활용됐다.

수원시는 복원사업을 마무리하고 24일 우화관 바깥마당에서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을 연다고 23일 밝혔다.
화성행궁 복원사업은 1989년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경기도립병원 이전이 논의되면서 닻을 올렸다. 화성성역의궤, 정리의궤 등 기록·발굴자료를 토대로 한 완성 당시 모습으로의 복원을 원칙으로 2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도립병원이 철거된 뒤에는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482칸을 복원해 2002년 1단계 사업을 마쳤다. 2003년부터는 화성행궁 최초의 건물이자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우화관과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던 별주를 복원하는 2단계 사업이 진행됐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최대 규모이다. 신도시의 성격을 지닌 수원화성의 행정을 도맡던 관청이자 화성유수부를 지키는 장용영 군사들의 군영 역할도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600여칸 규모로, 훗날 정조가 퇴위 후 머물 것을 고려해 정궁(正宮) 형태로 지어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긴 1789년부터 모두 13차례 이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일제가 통치권을 행사하던 1905년부터 제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섰고,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사용됐다. 1923년에는 화성행궁 일부를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이 지어졌다.

시 관계자는 “화성행궁처럼 다양한 역사를 품은 행궁은 없다”며 “이번 복원사업으로 그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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