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비 350만원” 다시 활개치는 건폭

정순우 기자 2026. 9. 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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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뀐 후 단속 유명무실
서울의 한 중견 건설사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산하 타워크레인노조가 집회를 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건설 현장의 미흡한 안전 관리나 부실 공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사 노조원을 채용해달라는 요구인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건설 업계 설명이다. /독자 제공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 박모 대표는 지난달 한 소규모 아파트 공사 타워크레인 공정을 따냈다. 하지만 2주 만에 스스로 포기했다. 수주 직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간부들이 찾아와 “우리 조합원을 고용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표가 거절하자 노조는 발주처인 건설사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박 대표의 다른 고객사 현장에서도 집회를 예고했다. 박 대표는 “노조원을 쓰면 웃돈을 줘야 해 소규모 현장은 무조건 적자라 공사를 포기했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 건폭(建暴·건설 현장 폭력) 노조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난 정부의 집중 단속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조합원 채용 강요, 타워크레인 기사에 대한 웃돈 요구 같은 악습이 작년부터 다시 만연하고 있다. 한 건설사의 경기도 아파트 현장에선 기사 10여 명이 월례비 명목으로 매달 350만원씩을 챙긴다. 서울 강남처럼 민원에 취약한 현장에선 인당 1000만원까지도 오간다.

◇친노조 정권으로 날개 단 ‘건폭’… 태업·시위·민원으로 3중 압박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0일 “공사장 펜스가 차려지면 곧바로 노조 간부들이 찾아와 ‘우리 조합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를 쓰라’고 압박한다”고 했다. 노조 소속 기사가 투입되는 순간 현장의 주도권은 노조로 넘어간다. 타워크레인이 있어야 골조 작업이 가능하고, 다른 공정에 쓸 자재를 인양하는 데도 타워크레인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을 장악하고 나면 조합원 추가 고용과 웃돈 요구가 뒤따른다. 타워크레인 업체가 월 300만~400만원의 급여를 주지만 노조원은 평균 300만원 안팎을 급행료나 월례비 명목으로 별도로 받는다. 초과근무 수당까지 더하면 월 1000만원 넘게 버는 사례가 흔해 ‘월천 기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도심 주거지 인근처럼 민원 많은 현장은 월례비만 1000만원을 넘기도 한다.건설업계에선 월례비 중 일부가 노조 간부에게 상납되고, 간부는 상납 잘하는 기사에게 일거리를 챙겨주는 구조가 되살아났다는 반응이 나온다. 월례비는 현금으로 주거나 차명 계좌로 송금하는 등 은밀하게 지급된다.

◇웃돈 덕분에 노조원들은 ‘월천 기사’

노조 요구를 거부한 현장은 공정이 마비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태업이다. 한 타워크레인 업체 관계자는 “건설 현장은 공기(工期)가 생명인데 안전 점검 등을 내세워 작업 속도를 늦추면 계약 위반으로 문제를 삼기도 어렵다”고 했다.

태업이 안 통하면 압박용 시위가 시작된다. 과거엔 공사장 주변에서 소음을 내고 진입로를 막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발주처 최고경영진의 자택 앞을 찾아가는 방식까지 동원된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박 대표가 끝내 공사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시공사 회장 집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노조의 압박이었다.

여기에 민원 테러까지 더해진다. 쉬는 시간에 작업자가 잠시 헬멧을 벗거나, 현장 폐기물이 분리수거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모습을 촬영해 관할 구청이나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는 것이다. 한 중견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건설 폐기물은 별도 비용을 들여 전문 처리업체에 맡기는데도 이를 악의적으로 문제 삼는다”며 “공무원도 사정을 알지만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를 나올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작업이 멈춰 피해가 누적된다”고 말했다.

공정 차질은 주택 현장을 넘어 국가 역점 사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지난 5월 타워크레인 노조의 파업으로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114대 중 84대(73.7%)가 중단되기도 했다. 노조는 나흘간의 파업 끝에 적정 임대료 보장과 임금 직접 지급제 등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800조원이 투입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도 노조 파업에 언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반도체 전격전도 노조가 발목 잡나

건설업계에선 현 정부의 친노조 기조가 건폭 부활의 주된 배경이라고 본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으로 노조의 부당 행위나 불법 파업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해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로막힌 데다 정부가 노조 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기업들이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에 맞설 생각을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현장소장은 “문재인 정부 때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70% 정도를 노조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지금은 최소 90%에서 100%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건폭과의 전쟁’ 때 경찰은 1년 5개월간 5175명을 검거하고 153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 정권 교체를 거치며 단속은 유명무실해졌다. 국토교통부 신고센터에는 2024년 12월 이후 관련 신고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피해가 없어서가 아니라 신고해봤자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폭 문제는 건설사만의 고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컨대 타워크레인 기사 10여 명에게 매달 350만원씩을 웃돈으로 주는 현장에선 연간 4억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같은 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태업과 민원 조사로 공기가 늘어나면 입주 지연과 금융 비용까지 더해진다. 반도체 공장처럼 공기가 곧 경쟁력인 국가 사업이 타워크레인 하나에 발목 잡히면 피해는 경제 전체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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