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쏘니가 뉴 캡틴의 강력한 후보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예민했던 것일까. 이 질문이 나왔을 때 씁쓸한 여운이 머리 속을 감돌았다. 물론 곧바로 "기우일 거야"라는 혼잣말로 씁쓸했던 마음을 달랬다.
8월 11일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트레이닝센터. 안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틀 후 열리는 브렌트포드와의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라운드를 앞두고 개최된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화두는 해리 케인의 이적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케인의 이적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아침에 독일행 비행기를 타려다가 못 탔다는 보도도 있었다.
"오늘 첫 질문은 무엇일지 예상해보세요."
다소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질문도 나왔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웃으면서, 동시에 말에 뼈를 담아 응수했다.

"저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지난주 기자회견이 취소됐잖아요. 그걸 보면 저에 관한 질문이 아닐 것은 분명할 거예요."
케인의 이적에 관한 질문과 답이 나왔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시원하게 말했다. 하긴 시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다 이적이 보도된 후였다.
"이제 케인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케인의 딜이 임박했어요."
뉴 캡틴에 관한 질문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캡틴 해리 케인의 빈자리가 너무나 커 보였다.
"새로운 캡틴은 정했나요? 어떤 선수가 적합할까요?"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주장의 요건을 말했다.
그러자 그다음 질문이 나왔다. 이 글 첫 문장에 쓴 그 질문.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답변이 너무 두루뭉술했다. 자신들의 성에 차지 않은 듯했다. 대놓고 손흥민을 찍어서 물어본 것이다. 당연히 뉴 캡틴 후보로 손흥민만 한 선수가 없으므로 질문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의도를 불순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불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2022~2023시즌 영국 언론의 집요한 비판에 마음이 불편했던 당시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해 9월이었다. 손흥민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21~2022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부진에 빠졌다. 리그 개막 후 8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1도움만 했다. 영국 언론들은 교묘하고 집요했다. 당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상대로 질문을 이리 해보고, 저리 해봤다. 손흥민 흔들기에 나섰다.

'왜 히샬리송에게 기회를 주지 않느냐.' '클루세프스키는 왼쪽 오른쪽 다 소화할 수 있는 선수인데 어떠냐.'
대놓고 손흥민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질문만 바꿔가면서 감독에게 날려댔다. 아예 손흥민 본인에게 "아직도 여전히 첫 골을 기대하고 기다리냐?"며 묻기도 했다. 손흥민은 2022년 9월 11일 레스터시티전에서 교체로 들어갔다. 13분 동안 3골을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하라는 의미의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 손흥민은 상당히 늦게 나왔다. 그럼에도 영국 기자들은 끝까지 기다렸다. 퇴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영국 기자들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통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국 언론들에게 손흥민은 그저 외국인(특히 아시아인) 용병에 지나지 않기에 언제든지 다시 저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때문에 11일 기자회견에서 캡틴 관련 질문에 손흥민을 콕 집어서 엮었다는 것. 성과가 좋지 않으면 캡틴 손흥민을 흔들 수 있다는 선전포고가 담겨있다고 해석했다면 너무 많이 나간, 일종의 비약이었을까.
비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9월 당시 영국 언론의 집요함에 상처를 받아 괜한 피해의식, 자격지심이 발동됐다고. 세상은 착한 곳이고, 사람들은 순수하니까. 여기는 신사의 나라 영국아닌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 질문에 원론적으로 답했다.
"리더십은 한 명의 선수가 아니라 많은 선수들의 그룹에서 나옵니다. 선수들 스스로 문화와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해요. 그 일을 잘할 선수가 누구인지 지켜볼 겁니다."
기자회견이 끝났다. 훈련장 정문 바깥으로 향했다. 팬들이 꽤 있었다. 몇몇 팬들과 인터뷰했다. 두 명만 응했다. 해리 케인의 이적에 관해서 물었다. 그리고 뉴 캡틴으로 누가 적합한지도 물었다.
"제임스 매디슨이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요."
단 두 명 팬의 일부 의견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시 씁쓸함을 느꼈다. 아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객관적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기자의 신분이었지만 그런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가 브리티시였다면…. 아니 유러피언이었다면….'
12일 오후 4시 25분. 런던 워털루역에서 떠난 SWR 기차가 복스홀역을 지날 때였다. SNS에 캡틴 완장을 찬 손흥민 선수의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토트넘에서 주장을 맡을 이는 손흥민밖에 없었다. 사진을 캡처했다. 내 SNS에도 이 소식을 전하고 축하도 동시에 올렸다. 자랑스러웠다.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클럽에서 주장을 맡는 것은 박지성(2012~2013시즌 QPR 주장)이후 두 번째였다. 잘할 것이고, 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손흥민이 보여준 리더로서의 역할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살짝 한숨이 나오기는 했다. 축구는 어렵다. 신도림 조기축구회 에이스인 '김덕배'도 팀 선배들이 나가자 홀로 소주를 들이켜면서 "하. 축구 어렵네"라고 되뇔 정도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아쉽다면 팀의 리더십에 비난이 쏠릴 것이다.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일순위다. 그리고 캡틴도 리더십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2024년 5월 말. 이 글에 대한 반성문을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문장을 꼭 넣고 싶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했습니다. 너무나 잘했기에 그 누구도 캡틴 쏘니를 흔들지 않았는데 말이죠.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