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부터 ‘농도불이’까지…농협, 농업가치 확산에 선봉장 역할

이재효 기자 2025. 8.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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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농업·농촌 운동 역사
농업시장 국제화·개방화 대응
도시민 대상 농업 중요성 알려
고향을생각하는주부들의모임이 1994년 2월2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농업시장 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신토불이 운동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농민신문DB

64년간 농민 곁에서 헌신한 농협은 ‘신토불이 운동’ ‘농도불이 운동’ 등으로 농업·농촌의 가치를 알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농협의 농업·농촌 운동은 1965년 시작된 ‘새농민 운동’에 뿌리를 둔다. 당시 농협은 농민이 잘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농민 스스로가 구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1965년 8월 새농민 운동을 제창하며 ‘자립·과학·협동’이라는 새농민상(像)을 설정하고, 이듬해부터 이를 만족한 선도농을 선정해 표창했다. 새농민 운동은 조합원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경제력 향상과 협동정신 고양을 이룩하는 최초의 상향식 개혁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협의 역할은 농업·농촌이 시장 개방의 풍파를 겪던 1980년대 후반 다시 빛이 났다. 당시 농업계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으로 농산물시장이 개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여기에 1989년 농산물 수출국의 압력에 대응해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가트(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국제수지(BOP) 조항을 졸업하며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농협은 양담배·쇠고기 등 제한된 품목만 들어오던 시절엔 수입 농산물 불매운동을 펼쳤지만, BOP 조항 졸업 이후 개방 품목이 크게 늘면서 운동 추진에 한계를 맞는다. 그 돌파구로 1989년 우리몸에는 우리농산물이 가장 적합하다는 의미인 ‘신토불이(身土不二)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이 국민과 언론의 큰 주목을 받으며 전 국민에게 우리농산물 붐을 일으켰다. 1993년에는 가수 배일호가 발표한 동명의 가요가 인기를 끌며 운동에 더욱 불이 붙기도 했다.

신토불이 운동의 효과는 쌀시장 개방 반대 범국민 운동으로 이어졌다. 농협이 1991년 11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쌀시장 개방 반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한 결과 42일 만에 국민 1308만명이 참여했다.

UR 협상 타결 이후 농협은 농업시장의 국제화·개방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가소득 증대에 힘썼다. 그러면서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도시민에게 알리고 우리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농도불이(農都不二) 운동’을 전개했다. 농도불이 정신은 2003년 추진된 ‘농촌사랑 운동’으로 이어져 1만건이 넘는 1사1촌 자매결연 등 적잖은 성과를 냈다.

2004년에는 급변하는 농업환경 속에 농협이 조합원에게 주는 실익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9월 ‘새농촌·새농협 운동’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농협은 농축산물 유통사업을 혁신하고 조합이 자립경영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후에도 2011년 ‘식(食)사랑 농(農)사랑 운동’, 2016년 ‘또 하나의 마을만들기 운동’을 통해 농업·농촌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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