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연아’ 다시 불붙다…이해인, 올림픽 전 마지막 시험 통과 싱글 쇼트 6위

피겨스케이팅은 늘 결과만 보고 판단하기 쉬운 종목이다. 몇 위를 했는지, 메달을 땄는지 못 땄는지. 하지만 막상 빙판 위에서 벌어진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순위표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번 사대륙선수권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이해인의 6위 역시 단순한 ‘중간 성적’으로 넘기기엔 의미가 작지 않다.

이해인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ISU 사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총점 67.06점을 받았다. 기술점수(TES) 34.38점, 예술점수(PCS) 32.68점. 이번 시즌 자신의 쇼트 프로그램 최고점이다. 순위는 6위였지만, 3위 지바 모네와의 점수 차는 단 1.01점. 프리 스케이팅 결과에 따라 충분히 메달권을 노릴 수 있는 위치다.

이 점수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피겨 점수 구조부터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쇼트 프로그램은 구성 요소가 제한돼 있어 큰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해인은 전체적인 흐름과 스케이팅 스킬, 음악 해석에서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PCS가 32점 후반까지 나온 이유다. 프로그램 구성 요소 점수에서 큰 손실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기술 요소에서는 작은 감점들이 쌓였다. 첫 점프였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에서 쿼터 랜딩 판정을 받으며 수행점수(GOE)가 0.51점 깎였다. 이어진 더블 악셀은 안정적으로 처리해 가산점을 얻었지만, 후반 가산 구간에서 시도한 트리플 플립에서 에지 사용 주의와 회전 부족 판정이 동시에 적용되며 1.36점이 빠졌다. 이 두 요소만 놓고 보면, 순위 싸움에서 충분히 갈릴 수 있는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인의 쇼트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큰 실수 없이 프로그램을 마쳤고, 시즌 내내 흔들리던 점프 흐름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는 점이다. 점수표를 보면, 손해를 본 요소와 잘 챙긴 요소가 명확히 갈린다. 이는 곧 프리 스케이팅에서 보완 포인트가 분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사대륙선수권은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열리는 사실상 마지막 대형 리허설이다. 선수들은 이 무대에서 컨디션, 점프 안정성, 프로그램 완성도를 동시에 점검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인의 시즌 베스트는 올림픽을 향한 흐름이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왔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경쟁 구도는 만만치 않다. 일본 선수들이 1~3위를 휩쓸며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나카이 아미와 아오키 유나, 지바 모네 모두 점프 성공률과 구성 점수에서 안정감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쇼트에서 완벽했다고 보긴 어렵다. 점수 차가 크지 않다는 점은, 프리 스케이팅에서 한 번의 흐름 변화로 순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인의 이번 대회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빙판 위의 점수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시간 동안 경기 외적인 논란과 징계 문제로 오랜 공백과 심리적 부담을 겪었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다시 대회 출전이 가능해졌고, 그 과정 자체가 선수에게는 큰 시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반전을 만들어냈고, 올림픽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점수로 증명하고 있다.

한국 피겨는 오랫동안 김연아 이후를 이야기해왔다. ‘제2의 김연아’라는 표현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이해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결과 때문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 경험과 회복 과정이 함께 쌓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쇼트 프로그램 6위라는 숫자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더 중요하다.

이제 남은 것은 프리 스케이팅이다. 프리는 점프 개수가 많고, 체력과 집중력 관리가 성패를 가른다. 쇼트에서 드러난 감점 요소를 얼마나 줄이느냐, 그리고 프로그램 후반까지 흐름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이해인은 이미 한 번 사대륙선수권 정상에 섰던 경험이 있다. 그 기억은 부담이 아니라, 이번 무대를 버텨낼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번 쇼트 프로그램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히 맞아 있다. 점수표가 말해준다. 이해인은 다시 경쟁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프리 스케이팅이 끝났을 때, 이 6위가 ‘중간 경유지’로 기록될지, 또 하나의 반전 서사의 출발점이 될지는 이제 그의 연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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