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찜통 더위, “걸어서 들어오라”는 아파트의 현실
습도가 높고 아스팔트 온도가 40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 일부 초고가 아파트 단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단지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기사들은 아파트 외곽 쪽문(정문이 아님)이나 경비실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신분증 등 소지품을 맡긴 뒤에야 출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단지가 워낙 넓고 동마다 보안이 엄격해 음식 한 건만 비대면 배달해도 5분~10분씩 뜨거운 길을 걷거나 뛰어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배달 건수가 많은 점심·저녁 시간대에 “오토바이 주차→신분증 제출→걸어서 각 동 이동→고객 현관 앞 배달→도보 복귀→소지품 수령”까지, 한 번 배달로 소모되는 체력과 시간은 일반 빌라, 저층 아파트 대비 2~4배나 많다.

‘천룡인 아파트’라 불리는 배달금지 리스트의 실체
“이런 미친 곳은 배달 자체를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실제 배달 기사들은 곤혹스러운 심정을 토로한다. 배달앱 업체는 주문 거절률을 일정 이하(예: 10% 미만)로 제한하고 있어, 연속으로 거절할 경우 자동으로 활동 정지(페널티 등)가 걸린다. 더위 속에 “천룡인 아파트라 불리는 배달 금지·배달 까다로운 단지”라 해도, 현실적으로 거절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구조다.
실제 서울 강남, 한남동, 서초구 일대에는 “천룡인 아파트” 리스트가 기사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단지만 50곳이 넘는다. 대부분 입주민·관리사무소의 요구, 보안 강화, 프라이버시 이유로 오토바이 진입을 막고 있지만, 극한 환경에서 노동자의 건강·효율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모습이다.

배달료 시스템에 숨은 또 다른 ‘갑질’의 그림자
배달앱 플랫폼(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은 “배달 난이도에 따라 배달료를 산정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공개 기준이 없고 실제로 체감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 긴 단지, 출입 복잡, 엘리베이터 이용 불가, 도보 이동거리 증가 등을 반영한 피크타임 가산금이 별도로 책정되지 않을 때가 많다. 1층 로비 비대면 배달, 주유소·집 앞 배달 등 일반배송과 동선·노력이 천차만별임에도, 한 건 평균 수익이 비슷하다면 현실은 배달기사에게만 가혹하다.
게다가 “입주민 요청에 따라 ‘단지 외곽에서만 배달 가능’하거나, 단지 내 기사 대기 구역을 제한”하는 등 아파트별 별도 규정도 난립해 혼란을 키운다.

‘배송 메모’로 기사 심기 자극…번호키 방식의 모욕감
최근엔 일부 입주민이 배달 메모에 “시간이 지나도 저와 여러분의 위치는 변화가 없을 겁니다” 등, 사실상 배달기사의 노동 현실을 무시한 문구로 기사들의 분노를 샀다. 이런 메시지는 ‘서비스 제공자’가 노동자 위에 군림하며, ‘을’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지적해 논란을 더한다.
“한여름 39도 더위에 땀범벅으로 웃으며 음식을 건넸더니 돌아오는 건 모욕의 메시지뿐”이라는 기사들의 후기가 커뮤니티에 퍼지며, 기사와 소비자 사이의 감정적 벽만 두터워지고 있다.

노동 존중, 사회적 최소 안전망 부재의 현실
열사병·탈수·근육손상 같은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배달 기사들은 “한 철, 하루라도 쉬면 수입이 곧장 끊기고 일정 수준의 콜(배달 건수)을 못 채우면 등급 하락, 수수료 증가, 배차 제한 등 불이익이 가중돼 울며 겨자 먹기로 뛰고 있다”고 한다. 특히 “플랫폼 업체는 배달료 체계 개선, 단지 출입 기준·수수료 공개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외면받는다.
서울시와 일부 플랫폼사는 “폭염 기준 온도 이상 시 건강 배려, 안전수칙 안내, 기사 사전 동의한 단지 외 곧바로 배차 제외” 등 가이드라인을 내놨으나, 실제 적용률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고객과 기사, 플랫폼 모두가 바꿔야 할 ‘노동 존중’
냉정한 현실에서, 강남·한남동 아파트 갑질은 ‘시민의식’ 문제만이 아니다. 고객이 기사 노동의 ‘값’(수고, 위험, 인권)을 조금 더 인정해야 하고, 아파트 단지와 관리사무소는 무조건적인 진입 금지, 불합리한 도보 강제 대신 최소한의 동선 보장, 공동체 상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사 역시 실제 난이도 반영 배달료, 고위험 환경 가산금, 기사 선택권 확대와 투명한 기준 공개 등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존재 의미가 있다.
이번 논란은 현장의 ‘을’이 사라진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배달 기사 한 명의 땀, 분노, 건강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기본값임을 모두가 다시 한번 되짚어야 할 때다. 배달 음식이 편함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숨겨진 노동과 존중이 잊혀져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