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한 달 새 서울 아파트값 4.5% 내렸다고?"…시장은 당혹
실거래가 평균가 비교로 변동폭 커져…"신속보다 통계 안정성 높여야" 지적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1.27% 상승', '0.89% 상승', '4.5% 하락'
각각 한국부동산원, KB국민은행, 그리고 공인중개사들의 모임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발표한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가격의 전월 대비 변동률이다.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으로 대표되는 주택가격 조사 기관에 최근 공인중개사협회가 가세하면서 주택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매매 거래가 감소하고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이는 등 주택 시장이 변곡점에 놓인 시점에 중개사협회가 던진 상반된 아파트값 통계가 시장의 혼란을 가중하는 모습이다.
8월 서울 아파트값은 과연 올랐을까, 떨어졌을까.
KARIS "8월 서울 아파트값 4.5% 하락"…부동산원 실거래가지수와도 차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8월 주택시장의 실거래가격을 즉시 반영하는 '부동산통합지수시스템'(KARIS)을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국가공인 시세 조사 기관인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이 양분하던 집값 통계에 공인중개사들이 만든 민간 통계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중개사협회는 개업 공인중개사들이 실무에서 사용하는 거래 플랫폼 '한방 거래정보망'에 수집된 계약서와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 상의 매매 및 임대차 계약 데이터를 분석해 매월 가격 통계를 공개한다.
부동산원과 KB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은 조사자가 중개업소 설문을 거쳐 매물 호가와 실제 거래 가능 가격을 판단해 적정 시세를 정하지만, 중개사협회의 KARIS는 실거래가의 가격 변동을 구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시세'와 '실거래가'는 엄연히 다른 만큼 KARIS 통계는 부동산원이나 KB의 월간 주택가격동향보다는 부동산원이 매달 발표하는 공동주택 실거래가지수와 유사하다.
그러나 협회가 최근 발표한 8월 KARIS 통계는 현재 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이나 실거래가지수 어느 것과도 다른 추이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KARIS 통계로 서울 아파트값은 7월에 2.4% 올랐다가, 8월에는 4.5%가 떨어져 아파트값이 한 달 만에 급락한 것이다.
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7월에 1.19% 올랐고, 8월에는 1.27%로 상승 폭이 확대된 것과 반대 결과다.
KB 역시 서울 아파트값이 7월 0.56% 상승한 뒤 8월에는 0.89% 올라 부동산원과 마찬가지로 오름폭이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KARIS 통계가 공개된 후 매수·매도 예정자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실제 아파트값이 하락했는데 정부 통계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시장 전문가들은 "통계의 변동 폭이 과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최근 아파트값이 단기 급등하고 시중은행 금리 인상 등으로 8월 들어 거래가 줄긴 했으나, 가격이 급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KARIS 통계는 똑같이 실거래가격을 활용하는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와도 차이를 보였다.
지난 15일 공개된 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8월 실거래가지수는 1.49% 상승했다. 7월(2.16%)에 비해 오름폭은 줄었지만, KARIS 통계와 달리 상승세는 이어간 것이다.
실거래가 평균으로 비교…"역대 이런 통계는 없었다"
KARIS의 집값 변동률이 기존 통계들과 다른 결과를 보인 이유는 뭘까.
우선 조사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는 거래 쌍에 의한 반복매매모형지수를 활용한다.
지수산정 기간 중 거래 신고가 2번 이상 있는 동일주택끼리의 가격 변동률과 거래량을 활용해 지수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매매의 경우 전세보다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단지, 면적, 동은 동일하면서 층수는 그룹(1층, 2층, 중간층, 최고층)으로 나눠 같은 그룹 내 이전 계약과 거래가를 비교한다.
이에 비해 중개사협회의 KARIS는 매월 거래된 실거래 가격을 면적당 가격으로 단순 평균해 가격 변동을 구한다.
쉽게 말해 7월에 A지역에서 1억원짜리 아파트 5건, 5억원 아파트가 3건이 팔렸다면 총 8건이 평균 2억5천만원에 팔린 셈이다.
그런데 8월에 1억원짜리가 7건, 5억원짜리가 1건이 거래됐다면 평균 매매가는 1억5천만원으로 떨어져 8월 들어 1억원이 하락한 것이 된다.
KARIS는 이 두 달의 평균 매매가를 비교해서 한 달 만에 아파트값이 40%가 하락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출방식의 함정은 특정 월에 어떤 지역에서 어떤 아파트가 많이 팔렸느냐에 따라 평균값의 등락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달은 아파트값이 높은 강남 3구의 거래가 많았다가 어떤 달은 강남 고가 아파트 거래가 줄고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의 아파트 거래가 늘었다면 평균 거래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남 아파트값은 떨어지고, 노도강의 아파트값은 상승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KARIS는 이러한 집계 방식으로 지난 8월에 용산구 아파트값이 전월 대비 20.9% 오르고 강서구와 서초구는 각각 21.9%, 11.5%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강남(-0.6%)·양천(-0.2%)·마포(0.4%)·성동구(1.0%) 등이 한 달간 ±0.2∼1% 움직인 것과 비교해 변동 폭이 매우 컸다.
KARIS의 이런 불안정한 가격 변동은 시장의 장기 추세를 보는 시계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부동산원이나 KB의 주택가격동향은 표본조사 방식으로 실거래가와 달리 매월 조사 표본이 정해져 있고 조사 대상 아파트에 실제 거래가 없더라도 적정 시세를 조사해 시장의 가격 변동을 보여준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실거래 평균가 비교는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그냥 그달에 거래된 아파트가 평균 얼마에 팔렸는지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며 그 평균가끼리 비교해 변동률을 산출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역대 이런 통계는 없었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도 차이가 있다.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신고된 전체 거래를 대상으로 분석하지만, KARIS 집계 대상은 중개사협회 회원사 가운데서도 '한방' 플랫폼을 이용하는 중개사의 매물로 한정된다.
한방을 쓰는 중개인은 중개사협회 회원 중개사 가운데 80% 정도이며, 중개사협회 회원이 아니거나 한방을 쓰지 않는 거래 물건과 아예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당사자끼리 계약을 맺는 직거래는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추후 거래 신고와 계약 해지 여부는 따지지 않기 때문에 '집값 띄우기' 용으로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취소하는 허위 계약도 가려내기 어렵다.
전문가 "집값 통계는 신속보다 안정성 중요"
중개사협회 측은 KARIS 통계에 대한 논란이 일자 내년 상반기에 공개하기로 한 KARIS 가격지수는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처럼 반복매매모형을 사용해 거래가를 분석하기로 했다.
실거래가 평균이 아니라 동일 주택군의 거래 쌍을 매칭해 가격 변화를 비교한 뒤 지수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협회는 "현행 평균가 방식의 통계도 계속해서 함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혀 서로 다른 통계와 지수가 발표됐을 때의 혼란은 시장 참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각 통계의 특징을 알고 있어야 시장 분위기를 오역하지 않는다.
물론 KARIS의 장점도 있다. 과거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는 신고기간의 시차 때문에 '뒷북 통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거래 신고기간이 계약 후 30일로, 두 달 뒤에 실거래가지수가 나오지만, 과거 신고기간이 60일 때는 석 달이 걸렸다.
부동산원과 KB의 현행 시세조사 방식은 중개업소의 보수적인 시세 판단으로 실제 시장 변화에서 다소 후행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호가보다 1억원이 낮은 급매물이 1건 팔려도 곧바로 시세로 인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 거래 사례가 쌓이거나 호가가 떨어져야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면 KARIS는 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중개사들이 계약서 작성 시점부터 통계가 집계되기 때문에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보다 최소 한달가량 통계가 빨리 나온다.
주택 매매는 물론 전월세 거래 변화와 상가·사무실 등 비주택 계약의 임대료 변동 등도 한 달 이내에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KARIS의 장점이다.
부동산원은 오피스텔이나 상가·사무실 등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료 변동 등의 정보를 분기별로 공개하고 조사 대상도 제한적이다.
협회는 올해 안에 관련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택과 상업 업무시설의 거래가와 거래량 변화를 일반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연구소장은 "주택시장은 생물과 같고 심리가 크게 좌우되는 만큼 신속한 정보 전달도 필요하지만 정확하고 안정된 자료로 정확한 시장 분위기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중개사협회가 보유한 빅데이터를 합리적이고 가치 있게 활용하면 부동산 시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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