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중공업이 미국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군함 건조·정비 이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군 MRO 수요 확대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협력 구도에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3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의 매출 구조는 조선(상선), 해양 등 2개 부문으로 나뉜다. 올 7월 말 기준 수주잔액은 조선 31조7900억원, 해양 5조1589억원으로 조선이 86%를 차지한다. 회사는 미국 해군 MRO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지만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선박 관련 수주가 없다.
이에 따라 이번 발표는 미 MRO 시장의 크기, 마스가 협력에 대처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상당하다. 미 해군의 MRO 수요 및 자금 소요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또 미 조선소와의 공동건조, 대미(對美) 공급망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경우 외형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해군 MRO 수주의 우선순위로 잡은 것은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정이다. 일반상선과 구조 및 기술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위험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 한화오션이 미 해군 보급선 'USNS윌리쉬라호'의 정비·수리(ROH)를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완료한 사례도 국내 조선사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군 함정사업 진출을 위한 첫 협력사는 비거마린그룹(VMG)이다. VMG는 미 해군·MSC함정 유지보수와 현대화에 특화된 조선사로 시애틀·포틀랜드·샌디에이고(태평양)와 노퍽(대서양) 등 미 전역에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는 지난달 워싱턴DC에서 미국 해군 지원함 MRO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MOU)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계약 내용은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 함정의 MRO 역량 확대로 보인다. 또 미국 내 조선 능력 보강(신조 포함) 협력 가능성도 검토 항목에 담겼다.
VMG가 수행한 함정 및 사업의 성격은 다양하고 규모도 크다. 화물보급선을 비롯해 연안전투함, 구축함 등 광범위한 MRO 이력을 가졌으며 군함 유지보수, 현대화, 특수임무 기능 강화 등 다양한 개조 경험이 있다.
수주한 미 해군 MRO 사업의 면면은 한국 해군과 비교해 규모부터 다르다. 지난해 3월 정비에 들어간 알레이버크급 미사일구축함(USS Barry, DDG 52) 1척의 사업비는 약 2906억원(2억900만달러)으로 약 16개월간의 정비에 400명이 투입될 예정이다.
또 앞서 수주한 구축함 2건의 MRO사업(DDG 53, DDG 85) 계약금은 각각 1823억원(약 1억3100만달러), 2157억원(약 1억5500만달러)에 달한다. 다만 군수지원함(유조선)인 USNS존루이스(T-AO-205)의 경우 388억원(약 2790만달러)으로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았다.

최근 VMG는 보급함·병원선 등 저부가 MRO보다 구축함·연안전투함(LCS) 등 고부가 영역의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삼성중공업이 지원함 중심의 초기 레퍼런스를 쌓은 후 VMG와 역할을 분담해 전투함 계열 공종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영업 커버리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 해군 수리 자격인 MSRA은 '주(state) 단위'가 아니라 '위치(location) 단위' 협정이다. 수행을 원하는 각 야드 주소마다 별도 신청·심사를 거쳐야 하고 입찰·수행은 권역별 지역정비사령부(RMC) 차원에서 이뤄진다. VMG는 오리건·워싱턴·캘리포니아·버지니아 등 다수의 거점을 확보해 대서양·태평양 수요를 폭넓게 겨냥할 수 있다.
다만 단기간에 지원함 계약을 체결하고 보수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군함을 수리할 도크조차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삼성중공업의 도크 가동률은 △조선 116% △해양 117%로 자체적으로 산정한 가동가능 시간을 초과했다. 모든 건조시설이 총가동 상태라는 의미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미국과 협력해 수행 사업을 늘려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는 중장기적으로 상선 및 특수선 공동건조, 부품·자재 클러스터 조성, 숙련공 양성 등 생태계 확장 등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현재는 미국 상선 및 지원함 건조를 맡을 수 있는 기틀 마련에 집중하는 단계"라며 "미국 외에 동남아시아 등 해외 조선소들과의 공동사업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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