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보다 정보조직 먼저 창설, 이스라엘 건국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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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이스라엘 정보 DNA의 기원
모사드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전쟁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본래 정보기관의 전통적 역할은 적의 기습공격을 미리 파악해 국가가 먼저 대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하마스·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단순한 정보수집을 넘어 적 수뇌부를 제거하고 지휘체계를 무력화하는 등 전쟁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반격하면서 정보기관을 집중 타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정보전을 더 이상 군사와 외교에 이은 제3전선이라 칭할 게 아니라 제1전선으로 불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전쟁의 실질적 주역이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대표적이다.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의회에서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겠다며 전쟁을 예고하자 이스라엘에서는 생사의 공포가 몰려왔다. 당시 이스라엘 국력은 이집트·시리아 등 아랍 5개국 연합에 비해 현저히 열세였다. 전쟁이 터지면 이스라엘의 패전이 자명해 보였다. 이스라엘 여론도 “싸울 준비는 돼 있지만, 자살할 준비는 안 돼 있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이스라엘 지도부는 전쟁을 택했다. 정보기관을 믿었기 때문이다. 1·2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향후 다시 닥칠 전쟁을 대비해 이집트, 시리아 등 반이스라엘 국가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상세하게 수집해 놓고 있었다 (2023년 5월 27일자 중앙SUNDAY 17면). 이 정보들의 힘으로 이스라엘은 불과 6일 만에 기적처럼 전쟁을 끝냈다. 세계가 놀랐다.
더 거슬러 올라 가보자.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보여준 눈물겨운 정보활동은 모사드의 정보DNA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아직 나라가 없던 시절엔 비밀 정보조직이 ‘보이지 않는 국가’ 역할까지 했다. 가장 급선무는 ‘국민 모으기’였다. 국민 없는 국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밀 정보조직은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해외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귀환을 돕는 모든 일을 했다. 이를 위해 모사드의 모태가 된 ‘모사드 레 알리아 벳(Mossad le Aliyah Bet)’을 1938년 창설해 수송선박을 확보하고 위조여건을 마련하는 등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이루어진 이 같은 눈물겨운 비밀활동 경험은 건국이후 1949년 창설된 모사드에 전수돼 모사드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능동적 정보활동은 건국과정에서 배태됐으며, 이후 수차례 국가위기를 겪으면서 제도적으로 발전했다. 더욱이 척박한 안보환경 속에서 유대국가를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라는 책임감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성격을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미 중앙정보국(CIA)국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마이크 폼페이오는 2023년 발간한 자서전 『한치도 물러서지 말라: 내가 사랑하는 미국을 위한 싸움』에서 모사드의 대담하고 공격적인 작전 능력, 특히 정보와 군사력을 결합한 정밀 타격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는 이스라엘 안보뿐만 아니라 미국의 중동질서 관리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술회했다.
AI 등 활용 모사드 활동·역량 무한진화
물론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무소불위식 정보활동이 많은 비판과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지상주의는 인도적, 윤리적 비판을 낳고 있으며, 특히 모사드의 거친 정보활동은 우방도 등을 돌리게 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공격성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헤즈볼라나 하마스와 같은 비대칭 위협은 정밀한 정보를 토대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비용면이나 전략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정보기관이 나서 주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국민들도 정보기관의 역할 확대를 원한다. 정보기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스라엘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스라엘의 한 방송사가 청취자에게 “만약 전쟁위기가 다시 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모사드와 함께 있고 싶다”고 답했다는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정보기관의 역할과 임무, 정체성은 그 나라가 처한 안보환경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모든 정보기관이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같은 공격성과 야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만큼 안보환경이 척박한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활동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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