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인사이트] 넷플릭스가 게임 AI 인재에 11억원 거는 이유

OTT·웹툰·게임 등 콘텐츠 산업의 흐름과 전략을 살펴보고, 변화의 의미를 짚습니다.

/생성형AI(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넷플릭스가 게임 인공지능(AI) 연구원을 뽑는다. 보상 상한은 75만달러(약 11억원)다. 최근 넷플릭스는 게임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목표는 게임 회사로 변신하는 데 있지 않다. 넷플릭스는 왜 이토록 게임에 공을 들이는 걸까.

스트리밍 다음 경쟁은 '체류시간'

과거 넷플릭스의 경쟁자는 디즈니플러스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처럼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끄고 유튜브를 보거나 틱톡을 넘긴다. 게임에 들어가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넷플릭스의 경쟁은 구독료가 아닌 하루 24시간을 두고 벌어진다.

게임은 이 변화 속에서 가장 강한 상대 중 하나다.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시간과 게임 한 판을 하는 시간은 결국 충돌한다. 이용자가 게임에 오래 머물수록 넷플릭스가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넷플릭스는 이미 거대한 구독자 기반을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유료 회원 수는 3억2500만명을 돌파했다. 이에 더 많은 가입자를 모으기보다는 기존 가입자를 더 자주, 더 오래 붙잡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게임은 구독 상품의 성격을 넓히는 장치에 가깝다. 넷플릭스 이용자는 추가 결제 없이 게임을 내려받을 수 있다. 광고도 없고 인앱 결제도 없다. 넷플릭스 공식 투둠 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회원이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은 120개를 넘는다. 게임 자체로 바로 돈을 벌기보다는 넷플릭스 구독 안에 더 많은 이용 이유를 넣는 방식이다.

넷플릭스가 콘솔 게임사와 같은 길을 가려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처럼 별도 기기를 팔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는 이미 거실 TV와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다. 이용자가 갖고 있는 화면을 그대로 게임 접점으로 바꾸면 된다.

최근 넷플릭스는 미국 LA 소재 '스튜디오 미디어 알고리즘 팀' 소속으로 근무할 게임 머신러닝 연구원 채용 공고를 냈다./사진=넷플릭스 공고 홈페이지 갈무리

AI는 IP 수명 늘리는 도구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게임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이다. 나이트스쿨스튜디오를 시작으로 넥스트게임즈, 보스파이트엔터테인먼트, 스프라이폭스 등 게임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기반을 쌓았다. 인수액이 공개된 넥스트게임즈의 경우 규모가 약 6500만유로였다. 넷플릭스가 게임을 단순 부가 기능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넷플릭스가 게임에서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지식재산권(IP)다. 오징어게임과 기묘한 이야기 같은 콘텐츠는 이미 전 세계 팬을 확보했다. 드라마 한 시즌은 끝나도 세계관은 끝나지 않는다. 오징어게임을 본 이용자가 게임 속 참가자가 되고, 기묘한 이야기를 본 이용자는 작품 속 마을을 탐험할 수 있다. 게임은 IP를 시청 이후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도구다.

오징어게임 IP를 활용한 ‘오징어게임:언리쉬드’는 드라마와 게임 간 선순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모바일게이머비즈에 따르면 오징어게임:언리쉬드는 지난해 3월 기준 약 1880만 설치를 기록해 넷플릭스 게임 중 두 번째로 많이 다운로드된 게임이다. 같은 집계에서 넷플릭스 게임 전체 누적 설치 수는 2억9500만건을 넘었다.

이번 AI 채용은 이 전략을 더 밀어붙이기 위한 선택이다. 넷플릭스 채용 공고에 따르면 이 직무는 게임 디자인과 머신러닝이 만나는 영역에서 이용자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단순한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이용자 경험을 AI로 바꾸는 연구 인력에 가깝다.

기존 게임은 정해진 대사와 사건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I가 들어가면 캐릭터의 반응이 달라지고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도 바뀔 수 있다. 배경과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조합된다면 같은 IP를 반복해서 소비할 이유도 커진다.

넷플릭스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성장한 회사다. 이용자가 무엇을 볼지 예측하는 기술은 이미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이제 AI의 역할은 추천을 넘어 이용자에게 맞는 경험을 직접 만드는 단계로 가고 있다.

오징어게임 IP를 활용한 ‘오징어게임:언리쉬드’ 게임 영상 이미지/사진=넷플릭스 게임 유튜브 갈무리

기술보다 어려운 건 이용자 습관

넷플릭스의 게임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다운로드 수가 늘었다고 해도 많은 구독자는 아직 넷플릭스를 게임 플랫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앱을 켜는 목적 자체가 아직 시청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전략 수정도 이어졌다. 일부 게임의 넷플릭스 출시 계획은 철회됐고, AAA급 게임을 준비하던 남부 캘리포니아 기반 내부 개발팀 ‘팀 블루’도 문을 닫았다. 대형 콘솔 게임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정면 승부하는 방식이 넷플릭스에 맞는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방향은 더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다. 남들이 만드는 대작 게임을 따라가기보다 넷플릭스가 이미 가진 자산을 활용하는 방향이다. 강력한 IP와 전 세계 구독자, 낮은 접근 장벽이 그 출발점이다. 여기에 AI를 붙이면 넷플릭스식 게임의 모양이 나온다.

다만 드라마를 잘 만드는 것과 게임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다 본 뒤에도 앱을 닫지 않게 하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넷플릭스가 풀어야 할 과제는 '보는 곳'과 '노는 곳'의 경계를 줄이는 데 있다.

알랭 타스칸 넷플릭스 게임 부문 사장의 발언도 이 방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지난해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에서 “넷플릭스 게임은 시즌 사이 이용자 참여를 유지하고, 좋아하는 IP와 상호작용하게 하며 이용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붙잡을 수 있다”며 “우리는 아직 ‘게임의 넷플릭스’가 아니지만 정확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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