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은 서로 호감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사귀는 건 아닌 사이를 가리킨다.
예전 같았으면 애매하고 확실하지 않은 관계로 평가받았겠지만, 요즘 시대는 좀 다르다. 연애는 안 해도 썸녀, 썸남 정도는 있어야 한단다.
“연애도 안 하는데 썸도 없어?”라는 말이 웃프게 현실이 되었다. 진지한 연애보다는 ‘썸’만 즐기는 친구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사실 연애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나는 솔로'의 제작진이 2010년대 초반 리얼리티 연애 예능의 원조 '짝' 제작진이라는 사실은 꽤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연애 예능은 과거와는 다르다. 방송국에서 시작해 OTT 플랫폼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 출연자의 연령대도 20대부터 50대까지 확장되었다. 끝이 아니다. 첫사랑·끝사랑·결혼·재혼까지 시청자의 연령대와 상황에 적합한 맞춤형 콘텐츠까지 선택지도 다양하다.
방송국에서 시작된 연애 프로그램은 이제 OTT 콘텐츠 시장의 핵심 카테고리가 되었다. 심지어 연애 예능 리액션을 다룬 유튜버까지 스타가 된다. 퇴근 후, 자기 전, 식사 중, 지하철 안. 우리는 누군가의 설렘과 고백, 눈물과 갈등을 지켜보며 ‘대리 감정’을 소비한다.
진짜 연애는 힘들고 복잡하지만, 화면 속 연애는 쉽고 안전하다. 아무런 리스크 없이 감정만 맛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그런 시대의 흐름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예능이다.
누가 봐도 멀쩡하고 매력적인 출연자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본 적 없다”고 고백한다. 생경하지만, 오히려 지금 세대의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여자의 방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서는 남자, 고백을 눈치채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관계. 촘촘한 편집과 음악이 없었더라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장면들은, 그래서 더 진짜 같다. 어색하고 서툴고,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이들이 진짜 ‘모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어쩌다 보니 연애 기회가 없었던 출연자들의 사연에 공감까지 간다.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같은 20대라니. 근본적인 불안함이 가장 큰 원인일 터인데, 책임이 있다면 지금의 4050세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반성도 해본다.
실제로 올해 초 한 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20대 미혼 남녀의 61.1%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모쏠’ 비율도 20%를 넘는다.
감정 소모, 시간 낭비, 경제적 부담. 사랑은 이제 감정이 아니라 리스크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연애는 미뤄지고, 대신 그 감정은 각자의 방 안 TV와 스마트폰 속 예능에서 소비된다.
필자 주변 지인들 대다수는 연애는 하지 않지만 연애 예능은 매주 챙겨본다. 한두 개가 아니라 네다섯 개씩 본다.
예능 속 설렘은 감정을 일으키고, 눈물은 공감을 만든다. 현실에선 시작하지 못하는 연애를, 화면 속에서 대신 겪는다. 연애는 안 해도 연프는 본다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요즘은 썸도·연애도·사랑도 콘텐츠가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본다. 우리의 연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연애 서사는 살아남았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열렬히 연애 중인 건, TV 속 출연자가 아니라 그들을 매주 지켜보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대학교 시절, 필자의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과 충분히 연애를 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야만 언젠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른스러운 감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 중요한 시기. 필자는 연애를 위해 시간·감정·돈을 비롯해 심지어 동성 친구와의 굳건한 관계까지 모든 걸 아낌없이 바쳤다. 지금의 결혼이 그 시간 때문이라고 인과관계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상처와 아픔으로 성장했음은 분명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쇼비즈가 아닌 다큐에 가까운 연애 프로그램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든, 책으로 읽든, 예능으로 보든 간에 그 내용들이 단순히 훈남훈녀의 판타지만 보여주지 않기를.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예능적 즐거움과 함께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