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부산, 에베레스트, 그후 20년
모험·도전 가치 지역 전파…산악계 선도적 역할 기대
보름 남짓 전인 지난 5월 16일은 부산 지역 산악 활동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운 날로부터 딱 20년이 지난 날이다. 2006년 5월 16일 오전 대한산악연맹 부산시연맹 소속으로 부산시와 국제신문이 특별 후원한 ‘2006 부산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김진태 서성호 두 대원이 셰르파 3명과 함께 북릉~북동릉 루트를 통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장도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등정을 전후해 살을 에는 듯한 영하 30도의 혹한을 이겨내고 이뤄낸 쾌거였다. 이전에 부산 산악인이 개인 자격으로 합동원정대에 참여해 에베레스트에 오른 적은 있었지만 부산산악연맹 차원에서 부산 산악인들로 꾸려진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것은 처음이었다.
부산산악연맹은 2000년대 들어 히말라야 고봉에 도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세계 최고봉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에베레스트를 먼저 오르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로라하는 부산 산악인 7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기대에 부응해 정상 등정에 성공했고 이 등반을 계기로 ‘내친김에’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에 도전했다. 부산시와 지역 언론, 기업체가 후원한 부산산악연맹의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는 이후 5년 4개월에 걸친 사투 끝에 완등을 이뤘다. 단일팀이 14좌 등정에 성공한 것은 세계 등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과였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 20년, 14좌 완등으로부터 15년이 지났다. 히말라야 8000m 고봉에서의 등반 경험이 부산산악계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부산 지역의 산악활동은 당시의 원정이 황금기라는 평을 듣는다. 14좌 완등이 워낙 두드러진 성과라 이를 뛰어넘을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지역 산악활동은 인상적인 활동을 펼치지 못했고 ‘침체’라는 말을 듣는 실정이다. 2020년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지역 산악단체의 해외 원정 등반을 쉽게 보기 어렵다. 부산산악연맹은 2023년 봄에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파견해 네팔 히말라야의 해발 6620m 미답봉 골둠피크를 등정한 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 대학 산악부로는 동아대 산악회가 2023년 남극 빈슨 매시프를 올라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이뤘다. 앞서 동아대 산악회는 파키스탄의 미답봉인 피크39에 두 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고군분투 끝에 돌아섰다.
이런 상황은 비단 부산만의 일은 아니다. 남극대륙 1786㎞ 단독 도보 횡단을 한 산악인 김영미처럼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는 이가 없지는 않지만 근래의 국내 산악 활동은 다소 침체기에 접어든 모양새다. 국내 대표적인 산악단체인 대한산악연맹은 산악전문지에서 등산단체가 아닌 스포츠단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 대한산악연맹이 내놓는 자료를 보면 지난달 초 대산련의 ‘2026 히말라야 SAT PEAK 원정대’가 네팔 히말라야 칸첸중가 지역의 미답봉 ‘SAT PEAK’를 세계 최초로 등정했다는 소식이 근래 해외 등반과 관련해 유일하다. 여기에다 ‘청소년 오지탐사대원 선발’을 제외하면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와 관련한 소식만 눈에 들어온다.
부산 산악계는 에베레스트 등정과 14좌 완등 이후 그 성과를 지역 사회와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희망원정대의 성과를 비롯해 부산 산악운동의 역사를 담고 산악문화 확산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부산산악박물관 건립 주장은 원정을 마무리한 2011년 이후 여러 차례 나왔지만 아직 구체화하지 못했다. 모험적인 등반의 흐름도 잇지 못했다. 여기엔 젊은 산악인 풀이 얕아진 데다 재정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부산을 비롯한 국내 산악계는 지금까지 모험과 도전에서 시대를 이끌어왔다.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기 이후 어려운 시기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국토 학술조사에 나섰고 1970년대에는 세계 8번째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했다. 이후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을 비롯해 고산 등반에서의 성과로 국민에게 도전과 모험의 가치를 알려왔다. 이제는 지역 산악계가 2006년 에베레스트 도전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고산·극한 등반과 함께 시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험과 도전의 세계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달 중순 기록처럼 하루 274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 설산 등반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등반과 모험 활동의 패러다임은 근래 들어 변화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의 기준과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고산이나 극지가 아니더라도 장거리 트레일 이어걷기와 같은 형태로 부산의 갈맷길과 같은 둘레길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에 나설 수 있다. 이전의 모험과 도전이 난이도를 우선으로 쳤다면 이제는 이어걷기처럼 창의성이 두드러지는 시대로 접어든다. 등산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한다는 부산에 모험과 도전의 기준과 방향점을 제시해 산악문화 저변을 확산하는 일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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