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께 드리는 글] 고리2호기·노후원전 수명 연장을 멈춰야 하는 이유

국정에 임하시는 대통령님의 열정과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13일 고리2호기 계속운전을 승인했습니다. 고리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장수 원전으로, 이미 40년 설계수명이 2023년 4월 만료되었고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고리2호기는 2033년까지 운전하게 됩니다. 수도권 언론 대부분은 이를 전력 수급과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러나 755만3000여 명이 사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이 결정은 ‘정책적 합리성’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의 확대’로 이해됩니다. 원전 이익은 전국이 나눠 가지지만 위험은 지역에 집중되는 불평등 구조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성 문제입니다. 노후원전의 위험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배관, 열교환기, 계측·제어 설비, 전기계통 절연, 격납건물 콘크리트는 수십 년의 열·습기·압력·방사선 환경에서 구조적 열화(劣化)를 겪습니다. 그것도 선형적이 아니라 ‘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부품 하나를 교체한다고 전체 시스템의 안전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설계수명 이상의 운전은 신규 건설보다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고관리계획서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주요 시나리오가 과소 설정됐다는 전문가 의견, 주민 대피 시나리오·교통혼잡·취약계층·병원·학교 등 실제 지역 조건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 등이 있습니다. 부울경은 지진과 태풍, 산업단지와 대도시가 한데 모여 있는 ‘다중 위험 지역’입니다. 고리단지는 세계적으로도 원전 밀집도가 높은 곳이며, 사고 발생 시 단순한 지역 재난이 아니라 국가적 재난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입니다. 고리2호기 심의는 세 차례 보류되었다가 갑자기 통과되었습니다. 주민 공람률은 0.02%에 불과했고, 자료는 대부분 비공개 또는 제한 공개였습니다. 원안위 회의 과정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규제기관이 절차 신뢰를 잃으면 그 어떤 기술적 설명도 지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다고 봅니다. 규제는 ‘법대로 했다는 형식의 준수’가 아니라 ‘주민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셋째, 흔히 반복되는 ‘원전은 싸다’는 경제성 신화도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은 안전성 보강, 부품 교체, 규제 비용, 보험료 증가,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또한 원전사고 가능성이 지역 이미지·수산업·관광업·부동산 등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ESS(에너지저장시스템)는 이미 국제적으로 신규 원전보다 저렴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 중입니다.
넷째, 지역성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고리원전 반경 30km에 학교 대학 병원 산업단지 항만 공항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327만 인구의 부산은 대규모 대피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도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시 수십 수백만 명의 노동자·학생·환자·노인 인구를 대피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원전 위험은 지역 주민에게 집중되고 전기는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구조는 환경적 불평등·부정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리2호기가 수도권에 있었다면 가당하기나 한 결정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특히 이번 고리2호기 연장은 단발적 결정이 아니라 고리2호기를 포함해 총 10기 노후원전의 연속 수명 연장의 전조이기에 문제입니다. 고리3·4호기, 한빛1·2호기, 월성2·3·4호기, 한울1·2호기까지 연장 추진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되는데 이는 한국이 노후원전에 의존하는 체제로 되돌아갈 위험을 뜻한다고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전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 에너지 전략의 부재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후위기시대에 에너지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세계적 흐름입니다. 그러나 노후원전 수명 연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이 아니라 과거 기술체계 신뢰에 기댄 정책이 아닐까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아라라(ALARA: 합리적으로 가능한 한 낮게) 원칙’을 강조하듯, 방사선 위해는 기준치 이하라도 가능한 한 낮춰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40년 설계수명 연한이 끝난 원전을 10년 더 돌리는 정책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건설 관련 현실 여건을 감안할 때) 결국 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다. 그걸 빨리 대비해야지 ‘탈원전이냐, 감원전이냐, 에너지믹스냐’ 이런 것 갖고 왜 싸우나. 그냥 필요하면 하고, 안전성 확보 안 되면 안 하고 열심히 노력해 보고 실용적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마이뉴스, 2025년 9월 11일).
고리2호기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국가 책임의 문제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원전 올인’ 정책으로 영구 정지해야 할 노후원전 고리2호기를 꼼수로 연장재가동하는 데 원안위가 동조한 것입니다. 안전을 무시한 이번 원안위의 결정은 윤석열의 ‘12.3 내란’과 같이 부산 시민 입장에서는 사실상 ‘환경 내란’이나 다름없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의 기시감이 들 정도입니다. 즉시 대통령 직속 독립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절차·자료공개·안전성·지역 의견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차제에 원안위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부울경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 패키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ESS·수요관리 중심의 새로운 전력믹스를 제시해 대한민국 에너지정책의 품격을 되살려야 합니다.
부울경 주민은 더이상 ‘위험은 지역이 감내하고 혜택은 수도권이 가져가는’ 잘못된 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고리2호기에서부터 멈추는 것이 한국 에너지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래야 윤석열 내란을 극복해가는 이재명 정부의 효용감을 지역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위험한 결정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대통령님의 책임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부끄러운 결정을 남기게 됩니다. 대통령님의 현명한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더30km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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