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은 총재의 착각
“어떤 것이 흔해지고 저렴해질수록, 그것을 보완하는 희소한 역량이나 자원을 확보한 쪽이 높은 수요를 누린다.”
구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할 바리안의 말이다. 생성형 AI가 범용화되자 시장은 이를 구동하는 필수 보완재인 첨단 반도체 칩과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보완재들이 물리적 한계와 기후 위기라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현대 경제는 ‘칩플레이션’과 ‘기후플레이션’에 짓눌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2.6%는 이 역설이 낳은 전리품이자, 동시에 한국 경제의 딜레마를 함축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장 기여분을 걷어내면 남는 숫자는 얼마일까. 두 반도체 공룡의 독주 뒤에는 칩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아 고사 직전인 내수 기업과 골목 상권의 한숨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가 긴축 기조를 시사하며 금리 인상의 장애물이 적다고 언급한 배경에는 구조적 고물가를 잡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물가 상승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교란 등 통제 불가능한 공급 측 요인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의 추가 금리 인상은 이미 얼어붙은 내수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서민 경제를 압박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워런 버핏의 ‘버핏 지수’, 즉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로 보면 한국 증시는 세계 6위권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불안정 가설을 통해 투자자들이 호황의 절정에서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낙관론에 중독된다고 경고한다. 반도체 호황에 취해 우리가 위험을 외면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균열은 깊어지고 있다.
실물 경제의 피로를 외면한 채 긴축의 페달을 급히 밟으면 예고 없는 파국이 찾아올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급망의 동맥경화를 뚫어낼 기술 경쟁력과, 실물 경제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는 일이다. 취한 기운을 걷어내고 냉정한 현실을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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