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꿔놓은 것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드론입니다.
수백만 원짜리 소형 드론 한 대가 수십억 원짜리 전차를 격파하는 장면이 전 세계 군 관계자들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한국군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국방부는 전 장병을 드론 조종 능력을 갖춘 전사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드론 전사 50만 명 양성 계획'을 추진 중이며, 그 첫 번째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1만 1천여 대 규모의 교육용 상용 드론 도입사업 입찰공고를 개시했습니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번 사업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핵심부품 국산화, 그리고 국방 분야 최초 복수 낙찰제 도입이라는 두 가지 파격적인 시도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만 1천 대, 숫자가 말해주는 것
이번 사업의 규모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방부가 공고한 '26년 육군 교육용 상용드론 도입사업'의 도입 규모는 1만 1천여 대입니다.
개인 취미용 드론을 수천 대씩 사는 것도 아니고, 군이 교육 목적으로만 이 정도 물량을 한 번에 도입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입찰공고 기간은 4월 14일부터 5월 26일까지이며, 제안서는 5월 27일까지 접수합니다.
이후 7월까지 시험검증을 마치고 올해 안에 드론을 실제로 도입한다는 일정입니다.
단순 구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검증까지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것이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드론의 위력을 목격한 뒤 한국군이 얼마나 속도를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국방 분야 최초, 복수 낙찰제란 무엇인가
이번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도적 변화는 국방 분야 최초로 도입되는 복수 낙찰제입니다.
기존 국방 조달 방식은 단일 업체를 선정하는 구조였습니다. 한 회사가 모든 물량을 수주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3개 기업을 동시에 선정하고, 수십 개의 협력업체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바꾼 것입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1만 대가 넘는 드론을 올해 안에 신속하게 공급하려면, 한 업체의 생산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 기업이 물량을 나눠 생산하면 속도가 빨라지고, 특정 업체에 문제가 생겨도 공급이 중단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중소 드론 기업들이 대형 국방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국내 드론 산업 생태계 전반을 키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산화가 핵심"… 예산도 검증도 여기에 맞췄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핵심은 국산화입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군에서 소형 드론 국산화는 계속 발목이 잡혀왔습니다.
데이터 송수신 모듈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 비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스스로도 "우리나라 소형 드론의 에코시스템은 거의 저변 수준"이라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국산 드론이 중국산 드론보다 비싸다는 점이었습니다. 낮은 구매 단가를 맞추려면 결국 중국산 부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죠.
이번 사업은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예산 편성 자체를 국산 단가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국산 가격을 정부가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험검증 단계에서도 국산화 비율과 품질을 철저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드론 전사 50만 명, 왜 이 계획이 나왔나
이번 도입사업은 더 큰 그림 안에 들어 있습니다. 2025년 9월, 안 국방부 장관은 '드론 전사 50만 명 양성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직업 군인과 징병된 전 장병이 군 복무 중에 드론 조종 자격을 취득하고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론을 다룰 줄 아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죠.

이 계획 아래 핵심기술이 국산화된 훈련용 드론을 3년 안에 5만 기 조달하는 목표가 세워졌습니다.
육군 2만 기, 해군 1만 기, 공군 1만 기, 분대당 1기 이상 배치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됐습니다. 이번 1만 1천여 대 도입사업은 그 5만 기 계획의 첫 단추이자 시범사업인 것입니다.
2026년도 관련 예산은 훈련용 드론 조달, 교관 육성, 훈련 인프라 정비를 합쳐 총 330억 원 규모입니다.
FPV 드론을 제2의 개인화기로… 박격포도 드론으로 대체한다
드론 전사 양성 계획을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보면 그 진짜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한국군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FPV 드론을 '제2의 개인화기'로 공식 위치 지었습니다. 소총처럼 개인이 휴대하고 운용하는 무기로 드론을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육군은 60mm와 81mm 박격포를 단계적으로 FPV 드론으로 대체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박격포는 전통적인 보병 화력 지원 무기입니다. 이것을 드론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전투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Army TIGER4.0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부터 추진해온 미래형 전투체계 실험에서 드론이 건물 밖 적을 탐지하고 무장 드론이 이를 제압하는 시나리오가 이미 실전 검증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교육용 드론 도입은 그 체계를 전군으로 확산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990년대 IT 인재 육성의 재현"… 드론 산업을 뿌리내린다
국방부가 이 계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군사력 강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국방부는 드론 전사 50만 명 양성 계획을 1990년대 IT 인재 육성과 같은 국가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이 군대와 학교를 통해 IT 인력을 대규모로 배출하면서 IT 강국의 기반을 닦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드론 조종 인력을 군을 통해 대규모로 양성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병역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젊은이들이 드론 조종 자격과 실무 경험을 갖춘 상태로 산업 현장에 투입된다면, 드론 산업 생태계 전반에 즉각적인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군이 국산 드론의 대량 수요처가 되면서 내수 시장을 키우고, 양성된 인력이 산업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론의 시대를 앞당겼다면, 한국은 그 시대를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