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이런 기분이구나!”…절박해진 OTT, ‘가성비 甲’ 스핀오프로 반격

2024. 9. 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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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
‘손해보기…’ 스핀오프 ‘사장님의 식단표’
원작 세계관 확장…가성비 좋고 리스크 적어
성공 포인트는 원작과의 탁월한 ‘연계성’
‘비밀의 숲’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 [티빙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붕붕 뜬 목소리, 딸기우유를 손에 쥔 말끔한 얼굴. ‘그’가 돌아왔다. 인간적인, 누구보다 인간적인 ‘검사 서동재’다. 짠할 땐 ‘우리 동재’, 남의 편일 땐 ‘느그 동재’라는 밈을 생성한 바로 그 남자다.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째지는 기분은 더 감출 수 없는 인간, 때론 너무 좋지만 때론 너무 나쁜 ‘처세술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비밀의 숲’(tvN)의 스핀오프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 드디어 주인공을 꿰찼다.

#2.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연애와 결혼에 부정적인 복규현과 19금 웹소설을 쓰는 모태 솔로 작가 남자연. 악플러와 작가로 만나 ‘혐관’ 케미를 시작한 현실 남녀는 난데없이 기괴한 판타지의 주인공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 웹소설의 세계에서 여주인공으로 빙의, 소설 속 남자 주인공과 로맨스를 풀어간다. ‘손해보기 싫어서’에선 주인공을 돋보이게 역할이었지만, 스핀오프 드라마 ‘사장님의 식단표’에선 극을 주도하는 캐릭터다.

“이런 기분이구나,주인공이 된다는 건” (‘좋거나 나쁜 동재’ 티저 중)

인기 드라마와 예능 속 조연들이 ‘주인공’이 됐다. 서사는 확장되고, 장르의 경계를 넘었다. 하나의 IP(지적재산권)는 ‘알까기’를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지금 K-콘텐츠 업계에선 ‘스핀오프’가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한 줄의 대사에서 세계관 확장…‘연계성’이 성공 포인트

“사마귀는?”, “휴가 갔어.”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다. 때론 ‘단 한 줄’의 대사가 거대한 왕국을 건설하고, ‘신 스틸러’ 조·단역들은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스핀오프 콘텐츠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핀오프(spin-off)’는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캐릭터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번외작’ 내지는 ‘파생작’이다. 스핀오프가 콘텐츠 업계의 중요한 흐름으로 떠올랐다. 예능과 드라마를 막론하고 분신술에 한창이다. 일각에선 ‘스핀오프’를 ‘히트작의 새 기준’으로도 본다.

‘스핀오프 예능’은 나영석 PD의 시리즈가 유명하다. 해외 각 지역에서 한식 전도사 역할을 해온 ‘윤식당’(이하 tvN)은 ‘윤스테이’에 이어 ‘서진이네’로 확장했고, ‘신서유기’는 ‘신서유기 스프링 캠프’(티빙)로 분화했다. ‘놀라운 토요일’과 같은 예능 프로램은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티빙)로 시청자와 만났다.

드라마 ‘손해보기 싫어서’의 스핀오프 ‘사장님의 식단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상이 한지현 [티빙 제공]

드라마의 경우 본편과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방영을 앞두고 있는 ‘좋거나 나쁜 동재’는 ‘비밀의숲’ 시리즈에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성공욕으로 ‘처세술’에 능한 서동재(이준혁 분)의 이야기를 담은 10부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드라마는 청주지검에서 일하게 된 서동재가 여고생 살인 사건을 맡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길복순’에서 파생한 ‘사마귀’는 청부살인 기업인 MK엔터 소속으로 긴 휴가를 다녀온 킬러 사마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마귀 역에는 임시완이 이름을 올렸다. 극중 사마귀는 ‘길복순’에서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 분)가 길복순(전도연 분)과 대화하다가 “휴가 갔다”고 대사 한 줄로 언급된 캐릭터다.

현재 방영 중인 신민아·김영대 주연의 ‘손해보기 싫어서’는 ‘사장님의 식단표’라는 2부작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로 태어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티빙에서 공개된다. 서브 커플(이상이-한지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새로운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사장님의 식단표’는 ‘손해보기 싫어서’에서 극중 웹소설 작가 남자연이 쓰는 소설의 제목이다.

김호준 CJ ENM 스튜디오스 CP는 “‘손해 보기 싫어서’의 남자연 캐릭터의 직업에서 착안해 스핀오프를 제작하게 됐다”며 “‘웹소설 작가가 드라마 안에서 써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는 설정이 또 하나의 드라마로 제작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획 배경을 밝혔다.

‘비밀의 숲’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 [티빙 제공]

스핀오프의 관건은 ‘연계성’이다. 오리지널 콘텐츠와 긴밀한 관계성에서 파생하는 것이 성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서진이네’를 통해 이서진이 ‘오너’가 된 것은 앞서 ‘윤식당’에서 “나도 대표하고 싶다”는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이라는 스핀오프로 제작을 확정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폭군’은 ‘마녀’ 세계관을 확장한 스핀오프 콘텐츠다. ‘노 웨이 아웃’ 역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스핀오프로 태어난다. 미스터 스마일은 ‘안명자(염정아 분)’의 의뢰로 한국에 들어오게 된 킬러다. 자연스러운 세계관의 연결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핀오프는 오리지널 콘텐츠 속 하나의 단서나 설정에서 파생해야 자연스러운 연결 흐름을 가질 수 있다”며 “오리지널과 스핀오프 콘텐츠는 근본적으로 같은 팬층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억지로 짜여진 이야기라 판단되면 시청자에겐 상업적 콘텐츠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 흐름을 공유한 서사라야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절박해진 OTT, 가성비 좋은 스핀오프로 반격

이처럼 스핀오프 프로그램들이 많아진 것은 ‘콘텐츠 홍수’ 시대로 대변되는 최근 방송계 트렌드와 흐름을 같이한다. 영상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케이블 채널, OTT 등 플랫폼이 확장되며 다양한 콘텐츠를 요구하게 됐다. 한 달 사이 수십 편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에서 작품이 경쟁력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콘텐츠는 ‘고비용, 고위험 상품’이다. 나날이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제작사는 ‘흥행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스핀오프’ 콘텐츠는 기존 팬층을 확보한 원작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강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핀오프는 일종의 ‘꿀 가성비’ 콘텐츠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시청률 면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 스핀오프 콘텐츠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과 달리 드라마 제작이 어려워진 환경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보험 삼아 제작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봤다.

탄탄한 원작의 팬덤을 확보한 만큼 ‘흥행 리스크’ 부담 절감은 제작사 입장에선 ‘천군만마’다. ‘히트 원작’은 투자자 입장에선 ‘원금 회수’를 위한 안전장치다. 정덕현 평론가 역시 “콘텐츠 제작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새로움을 시도할 땐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나 기존 시청층을 공유한 파생작이라면 안정적인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봤다.

넷플릭스 ‘길복순’의 스핀오프 ‘사마귀’에 출연하는 임시완(사진 가운데) [넷플릭스 제공]

게다가 스핀오프는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도 이점이다. ‘손해보기 싫어서’는 케이블 채널 tvN과 OTT 티빙이 협업한 첫 오리지널 드라마다. 스핀오프는 오직 티빙에서만 볼 수 있다. ‘신서유기 스프링 캠프’,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 ‘쇼미더머니 스핀오프-이머전시’도 티빙에서만 공개된 스핀오프였다. 티빙 초창기 가입자 확보를 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김 CP는 “본편 외에도 티빙의 차별화된 콘텐트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플랫폼과 제작진이 공통으로 느꼈다”며 “개성있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 능력, 본편 대본에서 강조하고 싶은 여러 포인트를 활용한다면 의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기획에 돌입했다”고 귀띔했다.

보통의 스핀오프 드라마는 본편이 끝난 뒤 제작, 공개되는 것이 관례지만, ‘사장님의 식단표’의 경우 본편 방영 중 동시에 제작됐다. 본편이 끝난 이후 바로 공개돼 OTT와 채널에서 동시다발적 ‘화제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좋거나 나쁜 동재’ 역시 티빙에서만 공개(10월 10일)된다.

정 평론가는 “콘텐츠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플랫폼들은 나날이 절박해지고 있다”며 “가입자 이탈 방지를 위해 기존 시청자가 좋아하고 주목하는 프로그램의 스핀오프로 가입자들을 유지할 수 있는 활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봤다. 윤 교수 역시 “플랫폼이 다변화되며 최근의 콘텐츠 전략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향하며 동시다발적 기획을 하게 됐다”며 “‘따로 또 같이’ 가는 기획을 통해 시청률과는 별개의 화제성을 가지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핀오프 콘텐츠는 제작진에게 ‘리스크 절감’ 효과가, 시청자에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이점과 더불어 신진 작가의 발굴, 육성을 통해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기도 한다. ‘좋거나 나쁜 동재’의 경우 ‘비밀의 숲’의 이수연 작가와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해온 황하정·김상원 작가의 데뷔작이다. 이 작가는 이 작품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한다.

전문가들은 “작가 양성과 신진 작가에게 데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면서도 “다만 오리지널리티가 원작에서 오는 만큼 신진 작가 개인의 성과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기에 기존 인지도에 의지한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고 자체 브랜드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고 봤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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