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 조기타결..‘물가연동 성과’ 반면 ‘트럼프리스크 여전’
年증가율은 2%대 전망 CPI 연동
역외자산 정비 폐지 등 제도개선
해묵은 과제 소요형 전환은 실패
트럼프 재협상 위험 방지책 없어
다만 이번 합의로 재협상 유리해져
[파이낸셜뉴스]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 협상이 조기에 타결됐다. 분담금 연간 증가율 연동 기준을 현행 국방비 증가율에서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바꾸는 성과를 낸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시 재협상이 요구될 수 있는 ‘트럼프 리스크’ 방지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4일 한미가 지난 2일 12차 SMA 체결 협상을 최종 타결하고 3일 가서명 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조기협상에 돌입한 후 불과 5개월 만에 8차례 회의를 거쳐 합의를 본 것이다. 마지막 8차 회의는 지난달 25~27일 마친 데 이어 지난 1~2일 추가협의까지 했다.
12차 SMA 합의안에 따르면. 우선 첫해인 2026년 분담금 총액은 1조5192억원으로 내년 총액 1조4028억원 대비 8.3% 증액됐다. 직전 11차 SMA의 첫해 증액률이 13.9%라는 점에서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유효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으로 과거 SMA 사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외교부에서 부각하는 성과는 SMA 기간 중 분담금 연간 증가율을 CPI에 연동했다는 점이다. 본래 CPI 연동은 과거 8~9차 SMA에서 적용됐던 기준이다. 그러다 트럼프 정부 때 협상이 진행된 10~11차 SMA 체결 과정에서 국방비 증가율로 연동 기준이 바뀌었다. 11차 SMA 기간 중 국방비 증가율이 평균 4.3%를 기록한 만큼, 체결 당시부터 국회를 중심으로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외교부는 이를 고려해 이번 협상에서 적극 요구했고, 그 결과 물가상승률 기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CPI는 현재 12차 SMA 기간 동안 평균 2%대로 예상돼 현행 국방비 증가율보다 절반 수준일 것으로 기대된다. 12차 SMA 종료 시점으로 보면 분담금 총액이 적게는 1000억원에서 2000억원까지 아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물가는 경제상황에 따라 널뛸 수 있다는 위험이 있는데, 이 때문에 연간 증가율 상한선을 5%로 정해 놨다. 과거 8~9차 SMA 때 상한선인 4%보단 높아졌지만, 연동기준을 돌려놓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최근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빈번해진 것이 12차 SMA 협상에선 고려되지 않은 것도 우리나라 입장에선 성과로 볼 수 있다. 주한미군 인건비·군사건설·군수지원 세 항목만 협상 대상이라는 점을 아예 전제하고 협상을 시작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는 핵협의그룹(NCG)을 꾸려 핵 기반 한미동맹으로 격상했고, 이에 따라 핵추진잠수함이 국내에 입항하는 등 전략자산 전개가 잦아지고 있다. 과거 트럼프 정부는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던 바 있다.
또한 12차 SMA에는 여러 제도개선도 포함됐는데, 특히 그간 지적돼왔던 역외자산 정비 지원을 폐지했다. 해외 미군의 자산을 우리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해 정비한 사례들이 있는데, 이를 차단한 것이다. 그 외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퇴직연금제 도입을 위한 운용 수수료 구체화 협의를 진행키로 했고, 국방부가 사용하는 건설관리비를 현물 군사건설 사업비의 3%에서 5.1%로 늘려 품질과 안전관리를 제고하게 됐다.
그러나 해묵은 과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소요형’ 전환은 이번에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소요형은 현행 연간 분담금 총액을 정하는 게 아닌 주한미군 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액수만 내는 방식이다.
일본에 주둔한 주일미군을 위한 SMA가 소요형이다. SMA 최초 체결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우위에 있었기에 초기에 부담이 큰 소요형이 적용됐고, 우리나라는 처음에는 액수가 작은 총액형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MA 체결을 거듭하면서 총액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소요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군이 주둔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부담이 확연히 커지고 있어서다. 외교부는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미 측에 상세히 설명하고 공평한 분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중이라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에서 소요형 전환을 주안점으로 뒀지만 한미 간 이견이 있어서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며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분담을 하고 있다는 점도 협상 과정에서 미 측에 자세히 설명했고, 미 측은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관점에서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트럼프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11차 SMA 체결 과정에서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해 협상을 어렵게 만든 바 있다. 10차 SMA 만료 이후까지 협상이 길어져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들이 무급휴직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방위비 분담금 수배 인상에다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SMA 기간이 1년 8개월 남은 시점에 조기에 협상을 개시한 것이다. 조기타결 목표는 달성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위험은 여전하다. SMA는 우리나라에선 국회 비준을 거치는 조약인 반면 미국에선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협정이라서다. 이번 합의에서 이를 고려한 대목은 없다.
다만 외교가에 따르면 SMA는 국제법적으로 한미 양국의 합의로 체결된 만큼 어느 정도 구속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재협상 요구는 쉽지 않다. 설사 재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이번에 합의된 12차 SMA 내용이 바탕이라 현행 11차 SMA보다는 유리한 입장에서 임할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 대선 결과를 가정해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SMA가 미국에선 행정협정이긴 하지만 국제적인 구속력이 있는 조약의 지위라 법적 안정성이 있다”고 짚었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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