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역성장 확정된 은행권, 기업대출 증가세에 '반색'

서상혁 기자 2022. 11. 2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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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은행 기업대출 잔액, 올 들어 70조원 늘어…기준금리 인상·레고랜드 사태 영향
'귀빈 대접' 한전 대출에도 대거 참전…금융당국 규제 완화도 증가세에 한몫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2021.11.2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올 한해 은행권 기업대출이 70조원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영향으로 올 한해 가계대출 영업 부문에서 '역성장'이 확실시되는 은행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금융당국도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규제를 풀어준 상황이어서 은행들이 코로나 사태에 이어 또다시 '유동성 잔치'를 벌일 여건이 마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11월 18일 기준 기업대출(대기업대출+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593조2867억원으로 지난 연말(522조1067억원) 대비 13.6%(71조18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대출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 연말 이들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69조4180억원에서 18일 103조952억원으로 48.5% 증가했다.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199조5851억원에서 227조2733억원(13.8%) 늘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 창구에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회사는 일반적으로 회사채라는 채권을 발행해 운영 자금을 끌어모으는데, 시장금리가 오를수록 발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금리)도 늘어나는 구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무보증 3년) AA- 등급 금리는 지난 연말 연 2.415%에서 9월말 5.280%로 올랐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나와 있는 은행 대기업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같은 기간 연 2.86%에서 4.38%로 상승했다.

9월 말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이후 은행을 찾는 기업은 더 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하면서 '국고채' 대우를 받았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 ABCP)의 부도로 채권시장에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시장금리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기업대출 잔액은 9월말부터 11월 18일까지 23조13억원 늘었는데, 지난 연말부터 18일까지 71조1800억원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최근 은행권은 한국전력 대출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한국전력은 지난 11일에 이어 22일에 두 번째 차입 금융기관 입찰에 나선다. 신용대출이며, 차입 규모는 5000억원이다. 레고랜드 사태 초기,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한전채가 자금의 '블랙홀'이 되자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는 한전에 채권 발행을 최소화하고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도록 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은행권에선 '귀빈' 대접을 받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한전 대출에 참여하라고 독려하고 있어 많은 은행이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기업대출 증가세는 은행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4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8일 기준 559조6838억원으로 지난 연말(574조7412억원) 대비 15조574억원 줄었다. 올해 가계대출 부문에서의 역성장은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특히 대기업대출은 상대적으로 기업들이 받는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데다, 외화송금 등 부수 업무를 맡을 수 있어 평소에도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대출이다.

금융당국도 은행권의 기업대출 유치를 위해 '판'을 깔아줬다. 금융위원회는 10월말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를 6개월 늦추는 한편, 예대율 규제를 6개월간 100%에서 105%로 확대하는 '규제 유연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같은 유동성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으로선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생긴다. 금융당국은 규제 유연화 조치를 통해 자금 공급 여력이 최대 40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은행권과 추가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은행권이 또다시 유동성 잔치를 벌일 여건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은행권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금융당국의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에 힘입어 대출 자산을 크게 늘렸다. 덕분에 연일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대출은 기본적으로 신용대출이라,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대출 위주로 늘었던 코로나 때와 비교하면 충당금 등 리스크 관리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금융당국의 규제 유연화 조치로 은행이 손쉽게 대출 자산을 늘릴 수 있게 된 건 맞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규제 완화 취지에 맞게 적재적소에 기업대출을 공급하고 있는지 '적정성'을 수시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을 제대로 썼는지, 규제 완화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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