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가는 푸틴, 드디어 선 넘나...핵무기 배치에 나섰다는데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3. 5. 26. 1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루카셴코 대통령 “핵무기 이전 시작됐다”
러, 1991년 이후 32년만에 첫 해외 이전 배치
‘핵 탑재 무기’ 통제권은 여전히 러시아에
미국 등 서방에 경고…나토 확장 억제 효과도
전문가 “우크라 도우면 핵전쟁이라는 경고”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자국산 핵무기를 벨라루스에 이전 배치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속 미국 등 서방이 꺼내든 ‘F-16 전투기 지원’ 카드에 러시아가 ‘핵무기 이전’이라는 맞불을 놓으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균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포럼 참석 차 러시아를 방문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벨라루스로의 러시아산 전술핵무기 이전 작업이 시작됐다”며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보관할 충분한 크기의 저장시설을 마련해뒀다”고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미 핵무기가 벨라루스에 도착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벨라루스로 돌아가면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러시아산 핵무기 이전 소식은 이날 러시아와 벨라루스 군 당국이 전술핵무기 이전 합의 등을 골자로 하는 협정에 서명한 지 몇 시간 뒤에 나왔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사실일 경우 러시아산 핵무기가 해외 이전 배치되는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벨라루스에 자국산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이번 핵무기 이전 배치가 합법이라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서방이 똘똘 뭉쳐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는 만큼 핵무기 이전 배치는 자국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넘긴 이스칸데르-M 미사일과 수호이(SU)-25 전투기에서 발사될 수 있는 전술핵무기에 대한 직접 통제권은 여전히 러시아에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미사일과 전투기 모두 전술핵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모델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서방의 움직임에 따라 최악의 경우 얼마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서쪽 국경에 대한 위협이 극도로 고조되는 상황인 만큼 핵무기를 활용한 군사적 조치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열세를 보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F-16 전투기 지원 가능성이 러시아의 핵 위협을 다시 야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전투기 지원만은 절대 안 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깨고 우크라이나 공군이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직접적인 전투기 지원 약속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공군에 조종 기술을 넘기면서 아예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전투기 지원’에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러시아는 이에 즉각 반발했지만 이미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공군을 대상으로 하는 조종 훈련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술핵무기 이전 배치가 현실화하면서 미국 등 서방에 맞서려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관계가 앞으로 한층 더 돈독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지원하는 형국인 만큼 러시아의 통제 권한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질 경우 벨라루스의 주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양국이 서로의 군사력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핵무기 이전 배치는 서방 지원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저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라루스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도 근접해 있다. 미국과 협력하는 나토 소속인 이들 국가들과 달리 벨라루스는 러시아 최대 우방국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언제든지 핵무기를 앞세워 나토를 견제하고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핵무기 이전 협정은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볼모로 잡기 위한 수단이라며 강력 규탄하고 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3월 협정 체결 당시에도 “이번 협정으로 벨라루스 내정은 한층 더 불안정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며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향한 벨라루스 국민들의 거부감 역시 극대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허드슨연구소 정치군사분석센터 소속 리처드 와이츠 소장은 “벨라루스로의 핵무기 이전 배치는 러시아가 보내는 정치적 신호”라며 “러시아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이나 F-16 전투기 등 강력한 무기를 계속 제공한다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