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씨름 재야 고수를 찾아가 한 수 배워봤다

이 장면을 보라. 1박2일의 김종민님이 팔뚝 굵기가 넘사벽인 미군을 상대로 팔씨름을 압도하는 모습인데, 어떻게 밋밋해 보이는 팔로 울끈불끈한 근육 덩어리를 넘겨버릴 수 있는 건지 다시 봐도 신기하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둘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팔씨름의 세계에서 체격이 작은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이기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유튜브 댓글로 ‘팔씨름으로 자기보다 큰 체급을 이기려면 어떤 근육을 길러야 하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고수들이 모여있는 대한팔씨름연맹에 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국내 팔씨름 선수들과 아마추어 덕후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마동석님이 이사로 재직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팔씨름 최강자가 되려면 엄지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전완근으로 이어지는 앞팔의 근육을 먼저 기르고, 맞춤형 훈련을 통해 악력과 각종 기술을 익혀야 한다. 상대의 손을 맞잡았을 때 주도권을 빼앗겨 제압당한다면 팔뚝이 아무리 굵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격이 작은 사람도 손아귀 힘만 세다면 더 큰 사람을 팔씨름으로 이길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 전신을 활용하는 복싱이나 종합격투기에 비해 한쪽 팔만 가지고 승부를 보는 팔씨름의 특성상 체급이 역량과 직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덩치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꼭 팔심이 좋은 건 아니라는 거다.

국내 팔씨름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팔씨름연맹은 -70㎏, -78㎏, -86㎏, -95㎏, 무제한의 다섯 개 체급을 운영하고 있는데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선수가 세 체급에 출전해 입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체급을 유지하면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일부러 다리나 몸통의 근육은 줄이고 팔씨름에 사용하는 팔만 집중적으로 발달시키는 경우도 있다.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회장
“내가 오른팔 선수로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다고 하면 일부러 왼쪽 팔 운동을 적게 해가지고 왼쪽 팔에 근육량을 적게 만들거든요. 양팔의 무게가 예를 들어서 15㎏, 15㎏인 것보다는 이쪽에 10㎏ 이쪽에 20㎏인 경우가 내가 오른팔 선수로서 기량이 더 높을 수밖에 없잖아요”

둘째, 팔씨름에 쓰이는 근육은 일반적인 헬스로 키우는 팔뚝과 다르다. 상대의 손을 쥐고 넘기는 게 핵심인 스포츠다 보니까 손끝에서부터 손목의 힘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전완근, 그 다음이 팔꿈치에서 어깨 사이의 이두·삼두근, 등 근육 순이다.

손끝에서부터 힘을 차례차례 길러나가야 팔씨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거다. 손아귀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광스럽게도 연맹 회장님과 손을 마주 잡고 한 수 배워봤다. 손목이 완전 제압당하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썰렸다.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회장
“그래서 모든 근육이 다 중요하지만 어깨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 힘이 아무리 좋아도 여기서 통제가 안 되면 여기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요”

팔씨름에서 손끝싸움은 씨름의 샅바싸움에 비유될 정도로 중요하다. 선수끼리 맞잡은 손끝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기술을 쓰는 만큼 단순히 어깨가 넓고 팔뚝이 굵은 사람보다 손힘이 더 센 사람이 유리하다는 거다. 이외에도 팔이 길고 손이 크고 두꺼울수록 힘을 쓰기 좋아 팔씨름을 잘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셋째, 팔씨름은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승패가 엇갈리기 때문에 기술과 스피드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단순한 힘겨루기로 결판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건데 김종민님의 승리 비결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회장
“김종민씨 같은 경우를 예로 들게 되면 아무래도 팔씨름에서 넘기는 동작 자체가, 반드시 둘의 힘겨루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힘이 100% 발휘되기 전에 내가 스피드로 먼저 넘길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일반인 남성이 아무리 체격이 좋아도 50㎏급의 여성 팔씨름 선수를 못 이기는 것도 이런 이유인데, 겉으로 보이는 근육량이나 외관만 보고 팔씨름 실력을 판단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 팔씨름할 때 손목꺾기라고 부르던 ‘훅’(hook)은 팔씨름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다. 이외에도 상대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꺾어 넘기는 ‘탑롤’(top roll), 어깨를 밀어넣어 몸무게로 짓누르는 ‘프레스’(press) 등이 있다. 기술 몇 번 당해보니 얇은 손목이 너덜너덜해지는 느낌.

팔씨름 선수들은 필요한 근육과 기술을 기르기 위해 각종 특수한 보조 장비들도 활용한다. 두꺼운 그립을 덤벨에 끼고 훈련하며 손아귀 힘을 기르고, 유명 팔씨름 선수의 손을 모델링 해 만든 ‘리얼 핸드’를 케이블 머신에 연결해 연습하기도 한다는데. 팔씨름 최강자가 되는 길은 이토록 치열하다.

취재하다 처음 알게 된 건데 대한팔씨름연맹에서는 분기마다 한 번씩 대회를 개최해 팔씨름 국가대표를 선발하고 있다고 한다. 각 체급별 랭킹 1,2,3위가 팔씨름 국가대표가 돼 해외 팔씨름 대회에도 출전한다고 하니 이 영상 보고 있는 왱구님 중 팔씨름 유망주가 있다면 국대에 한 번 도전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