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대 남자’ 현상, 대선 판도 흔들까 [데이터로 읽는 미국 대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팟캐스터 시오 본과 지난 8월 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장면 중 하나로, 트럼프가 시오 본에게 코카인과 마약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한 영상이 화제가 되어 인터넷에 널리 퍼졌다. 트럼프가 이렇게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는 평도 잇따랐다. 시오 본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으로 특히 젊은 남성에게 인기가 높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올여름 내내 이와 비슷한 팟캐스트 인터뷰에 트럼프 후보를 적극 내보내는 전략을 채택했다. 젊은 남성 유권자 공략이라는 승부수의 일환이다.
시계 제로.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오지만 선거와 여론 전문가들은 해리스와 트럼프의 승리 확률을 ‘50:50 동전 던지기’로 예측한다. 대선 토론 이후 추가 상승세를 탄 해리스는 전국 득표율에서 앞서고 있지만, 선거의 향배를 정할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주에서 두 후보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2020년과 마찬가지로 수만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정도 표 격차는 여론조사만 갖고 예측하기 어렵다. 팽팽할수록 양쪽 캠프와 언론은 부동층과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가장 치열한 경쟁은 부동층으로 분류된 Z세대를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젊은 남성 공략에 성공한 덕이라고 할 정도로 그 세대 유권자들이 선거 승부에 절대적이다. 한국의 2022년 대선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
미국 언론은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정치적 성향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도해왔다. 2010년 이후 30세 이하 젊은 남성과 여성의 이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젊은 여성의 경우 자신을 진보라고 분류하는 비율이 보수라고 보는 비율에 비해 30~40%포인트 더 높은 반면, 젊은 남성은 0~10%포인트만 더 높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8월 경합주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세대에 비해 30세 미만 젊은 세대는 남녀 차가 극명하다. 젊은 여성은 해리스 지지가 트럼프에 비해 40%포인트 가까이 앞서지만, 젊은 남성의 경우 트럼프 지지가 해리스 지지에 비해 약 10%포인트 앞서 있다(〈그림 1〉 참조). 다른 세대의 남녀 지지 격차는 20~30%포인트인데, 젊은 세대만 50%포인트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젊은 남성과 여성은 이념적 차이뿐만 아니라 정책 지지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기후변화, 임신중지, 학자금 융자 탕감, 트랜스젠더, 트럼프 부자 감세, 오바마케어 폐지,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건설에 대한 정책 선호를 조사한 결과 젊은 남성과 여성의 정책 지지 차이가 작게는 20%포인트, 크게는 45%포인트로 나타났다.
Z세대 내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젊은 남성의 보수화뿐 아니라 젊은 여성의 진보화 때문에 생긴 격차이기도 하다. 그러니 트럼프가 이득 볼 것이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20년 대선만 하더라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바이든 득표율이 트럼프 득표율에 비해 15%포인트 앞섰다. 바이든의 2020년 승리는 30세 미만 유권자가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을 30%포인트 가까이 더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거 예측 전문 웹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때와 모든 상황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이번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의 민주당 득표율 우위가 5%포인트라도 줄어든다면, 트럼프가 승리하게 된다. 〈뉴욕타임스〉의 조사대로 젊은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이 해리스 지지율을 앞선다는 결과가 11월 대선에서 그대로 실현된다면, 젊은 남성이 이번 선거의 와일드카드가 되는 것이다.
유권자 성향 파악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정치적 차이는 젠더 이슈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유래한다. 정치학자들은 젠더 이슈에 대한 입장을 측정하기 위해 ‘적대적 성차별주의’라는 지수를 사용한다. 간단한 질문 두 개를 던진다. “여자는 남자를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얻으려고 한다” “여자는 너무 쉽게 감정이 상한다”라는 문항에 동의 여부를 묻는다. 벤더빌트 대학 정치학과의 존 사이즈 교수는 이 ‘적대적 성차별주의’ 지수를 통해 해리스에 대한 호감도와의 관계를 보았다. 적대적 성차별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유권자는 해리스에 대해 0에 가까운 호감도를 표한 데 비해, 적대적 성차별주의 지수가 가장 낮은 유권자는 60의 호감도를 보였다. 단 두 가지 질문으로 해리스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유권자가 쉽게 판별되는 것이다.
젠더 이슈에 대한 견해가 어떻게 젊은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변화를 설명할까? 정치학자들이 널리 쓰는 협동선거조사(Cooperative Election Study)의 데이터를 사용해 분석해보았다. 2020년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을 2022년에 다시 조사한 패널 데이터를 이용했다. 같은 사람을 추적 분석함으로써 2년간 정치적 견해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적대적 성차별주의 지수의 2년 사이 변화가 지지 정당의 변화와 연관되는지 분석해보았다. 구체적으로 2년 사이에 새로 민주당을 지지하게 된 확률과 새로 공화당을 지지하게 될 확률을 보았다. 30세 미만의 여성과 남성들로 국한해서 보면 〈그림 2〉와 같다. 젊은 남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2년 사이에 증가할 경우 새로 공화당을 지지하게 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새로 민주당을 지지하게 될 확률은 성차별주의의 변화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젊은 여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2년간 낮아질수록 민주당을 새로 지지하게 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올라갈 경우 공화당을 새로 지지할 확률도 올라가지만, 민주당 변동 폭에 비해 훨씬 약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패턴이 30세 이상 유권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Z세대 내에서만, 젠더 이슈에 대한 입장 변화와 정당 지지의 변화가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젠더 이슈에 따른 정치적 재편 가능성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젊은 여성의 경우,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의 연방 보장을 폐지하는 사건을 계기로 젠더 이슈와 정치적 입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남성의 경우 좀 더 설명이 복잡하다. 몇몇 전문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젊은 남성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뒤처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중서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불안이 트럼프 지지를 이어간 것과 같이, 2024년에는 젊은 남성들의 불안이 트럼프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 남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교육과 취업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고 이제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가 쓴 책 〈소년과 남성에 대하여(Of Boys and Men)〉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적인 독자들을 상대로 남성들이 마주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1972년, 미국 고등교육에서 남녀 간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타이틀9라는 연방법을 제정한다. 이 당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대학 졸업자의 비율이 13%포인트 적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남녀의 격차가 역전되었다. 1982년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사라졌고, 2019년 들어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15%포인트 더 높은 대학졸업자 비율을 갖게 되었다. 성적으로 보아도 여성의 우위가 뚜렷하다. 고등학교 성적 상위 10%의 66%가 여성이고 34%가 남성이며, 성적 하위 10%를 보면 36%가 여성이고, 64%가 남성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1979년과 2019년을 비교하면 남성의 인구 대비 고용률이 감소했다. 특히 25~34세 젊은 남성이 가장 많이 떨어졌는데, 5%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같은 시기 젊은 여성이 25%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리처드 리브스의 책이 남성의 문제에 새로 주목한 점은 인종이나 계급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엘리트층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여성을 압도하고 있지만, 점점 계급의 사다리를 내려가면 남성이 뒤처지는 모양새다. 젊은 소수인종 남성일수록, 가난한 젊은 남성일수록,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일수록 위에 언급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임금을 들 수 있다. 1979년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에 비해 더 높은 임금을 벌었지만, 2020년 들어서서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앞섰다. 현재 버는 소득만이 아니다. 기회의 평등에서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 라지 체티의 연구에 의하면 부모의 소득에 따른 자녀의 미래 기대 소득을 볼 때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은 대체로 유사하다. 그러나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은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흑인 남성은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도 가난해질 가능성이 크고, 계급의 사다리를 오를 가능성도 백인 남성에 비해 뚜렷하게 낮은 것이다.
Z세대 남성 향한 트럼프 승부수, 통할까?
리처드 리브스가 이러한 남성의 이슈에 주목하며 경고한 점이 있다. 진보 진영에서 남성들이 당면한 문제를 외면할 경우 급진적 우파 인사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바로 그 빈자리를 노리고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헐크 호건이 연설한 것도, 트럼프의 남성성을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트럼프의 젊은 남성 유권자를 향한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젊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 젊은 남성이 예년과 달리 높은 투표율을 보여야 트럼프에게 유리할 것이다. 둘째, 해리스로 후보가 교체된 이후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지지 변화가 크게 보이는 반면, 트럼프에게 유리한 시그널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지난 두 달간 젊은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의 유권자 등록률이 예년에 비해 급격히 상승 중이고, 지지율 상승세도 뚜렷하다. 셋째, 젊은 남성 유권자가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젊은 남성이 과거에 비해 높은 트럼프 지지세를 보인다는 징후는 나타나지만, 젊은 남성은 전통적으로 조사하기가 어려운 그룹이다. 응답률이 워낙 낮고 정치에 관심이 낮기 때문에, 조사에 따라 결과가 크게 튀는 모습을 보인다. 투표일 당일까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불투명성을 뚫고 트럼프가 젊은 남성의 지지를 받고 더 나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Z세대의 젠더 정치에 대한 미국 내 관심도 더더욱 커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미국 전문가들은 한국의 사례를 더 배우고자 할 것이다. 이미 몇몇 언론인과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글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젠더 갈등을 비교해가며 미국 대선을 관찰하면, 미국 사회와 미국 대선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승민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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