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장례 어떡하라고”…고객 돈놀이 상조업계, ‘제2의 티메프’ 되나 [뉴스+]
못 돌려받은 돈 300억원 육박
‘제2의 티메프’ 사태 발생할까
“소비자 보호 대책 마련 시급”
4년 전 소비자 A씨는 대기업 그룹 계열사라고 소개하는 ○○상조회사의 상조 상품에 가입하고 월 3만원씩 50회를 납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조회사로부터 자본금 유치가 어려워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A씨는 상조회사에 해약을 신청하고 납입액 전액 환불을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해약 환급률이 74.5%라며 111만 7500원만 환급받을 수 있다고 통보했다.
A씨는 “내가 변심해서 해약한 게 아니라 상조사의 폐업으로 계약을 해지했으면 납입액 전액을 환불해주는 게 맞지 않냐”며 “이미 4년간 들어놨던 보장은 물론 돈도 다 못 받는데 당장 새로운 업체를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처럼 고객들이 폐업한 상조회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보상금이 최근 3년간 약 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고객 자금을 사후에라도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폐업한 상조회사는 한강라이프(주)와 케이비라이프(주), ㈜한효라이프 등 총 8곳이었다.
이들 회사는 보상해야 할 총금액 1214억원 중 933억원만 보상금으로 지급해 현재 미지급 금액이 약 281억원에 이른다. 이들 회사의 누적 선수금 규모는 2431억원, 가입자 수는 13만 6000명이다.
특히 가입자 수 7만 3000명, 누적 선수금이 1344억원이었던 한강라이프(주)와 가입자 수 4만 1000명, 누적 선수금 897억원이었던 ㈜한효라이프의 경우 각각 100억원 안팎의 보상금을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비라이프(주)와 ㈜영남글로벌 역시 보상 대상 금액의 절반 내외를 지급하는 데 그쳤다. 지난 7월 폐업한 ㈜신원라이프는 아직 보상 절차조차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조 서비스는 장례와 같은 미래의 예식에 대비해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분할 납부하면 상조회사가 약정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기업들이 상조업계에 뛰어들면서 관련 서비스와 시장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발표한 KDI FOCUS ‘신종 금융상품의 고객자금 보호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조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 수는 864만명으로, 선수금 규모는 9조 4000억원에 육박했다. 고객 수로만 따지면 국민 6명 중 1명이 상조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황순주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사망자 수가 1만명 증가할 때 상조 계약 이용자 수는 누적 45만명 늘어나고 선수금도 6000억원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향후 사망자가 40만명 가까이 늘어날 것이므로, 사망자 1만명당 이용자 및 선수금 증가 폭을 작게 잡아도 수년 내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선수금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십조 단위의 시장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상조업계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2010년 이후 올해 4월까지 법 위반이 확인돼 등록이 취소된 상조업체 52곳 중 24곳이 선수금 예치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이 취소될 정도로 문제가 있던 상조업체 중 절반이 선수금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았다는 의미다.
상조업체는 금융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산 운용 현황 공시나 충당금 적립 등에 대한 의무가 없다. 다만, 상조 서비스가 금융상품 중 ‘선불식 할부거래 제도’로 분류돼 현행법상 선수금의 50%만 은행에 예치하면 그 외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당국이 제한할 수 없는 나머지 선수금 50%는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가입자의 선수금을 빼돌려 개인 사업 자금으로 유용하거나 사채 자금을 갚는 데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상조업계 3위 업체인 ○○사는 지난 2022년 13기 감사보고서에서 1년 동안 고객에게 걷은 납입금 중 797억원을 장단기 금융상품과 단기매매 금융자산 등 투자성 금융상품 구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22년 말 기준 선불금 1조 618억원 중 예치된 금액은 절반 이하인 1800억원뿐이었다.
상조업체들의 폐업과 자금 부정 운용이 이어지자 정부는 올해부터 상조기업에 가입자의 납입 금액, 납입 횟수 등을 연 1회 이상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개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또 업체들의 선수금을 관리하는 상조 공제조합에 대해서도 재정 건전성 유지 의무를 부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상조업체를 전담할 명확한 규제기관이 없는 만큼,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근본적인 소비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병덕 의원은 “머지 포인트, 해피머니 상품권, 티메프 등 똑같은 실수가 너무 많이 반복되고 있다”며 “상조업계 선수금을 예금보험공사 등 공적 영역이 일부 나눠 맡아 보호하는 ‘하이브리드형 선수금 보호방안’ 등을 통해 직접적 사후 보호 제도를 마련하는 등 공정위가 소비자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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