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만들 것"이라고 발표해 큰 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서 "우리가 건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못을 박으면서, 핵추진잠수함의 국내 건조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죠.
트럼프의 발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한국은 정말 자체적으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 수 있을까요?
트럼프 발언이 불러온 혼란
지난달 30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조 장소였습니다. 트럼프는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던 것이죠.
이 발언은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애초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에서 요청한 것은 '핵연료 공급'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잠수함 기체와 소형원자로를 자체 생산하고, 미국으로부터는 고농축 우라늄만 공급받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필리조선소는 현재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만한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조선소는 과거 핵잠수함을 건조했던 역사가 있지만, 현재는 그러한 능력을 상실한 상태죠.
결국 트럼프의 발언은 실무진의 협의 내용과 동떨어진, 즉흥적인 발표였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위성락 실장의 명확한 입장 표명
지난 11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핵추진잠수함 건조 장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가 건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이는 트럼프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죠.

위 실장은 미국 건조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필리조선소 잠수함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제너럴 다이내믹스에 우리 잠수함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은 방안"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특히 그는 "미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정"이라고 덧붙였는데, 이는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업체들이 자국의 수요조차 제때 맞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국방부도 같은 입장
위 실장의 발언에 앞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5일 핵추진잠수함 국내 건조가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안 장관은 4일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건조 장소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유동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위 실장이 나서서 국내 건조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명확해진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은 한국 정부가 핵추진잠수함 국내 건조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팩트시트 발표 임박
위 실장의 발언으로 한미 관세·안보합의 팩트시트 발표 시기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일주일 넘게 팩트시트가 발표되지 못한 이유로, 핵추진잠수함 승인을 둘러싼 미국 정부 부처 간 이견이 지목돼 왔습니다.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 관련 부처들 사이에서 의견 조율이 필요했던 것이죠.

하지만 위 실장이 공개적으로 국내 건조 방침을 밝힌 것은 미국과의 협의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만약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면,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 식 핵잠수함의 스펙
위 실장은 핵추진잠수함의 규모와 핵연료 농축 비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는 "버지니아급(7800t)은 우리가 진할 필요 없는 미국형 잠수함으로 5조원이 넘게 들어간다"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저렴한 우리 수요에 맞는 잠수함을 한국에서 지으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군은 5000t 이상급 핵추진잠수함 4척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버지니아급보다는 작지만, 프랑스의 쉬프랑급(5300t)이나 영국의 아스튜트급(7400t)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조선 기술력과 예산, 그리고 작전 요구사항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인 것이죠.
핵연료 농축도에 대해서는 "20% 이하로 쓸 것인지, 40%대나 90%대를 쓸지 정한 바는 없다"면서도 "대체로 20% 이하에서 할 수 있다는 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의 우라늄 농축도를 2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을 개정하거나 별도 추가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도약
핵추진잠수함 국내 건조가 확정되면, 이는 한국 조선업과 방위산업에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한국은 이미 재래식 잠수함 건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214급, 장보고-III급 잠수함을 성공적으로 건조해왔고, 이를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기도 했죠.

여기에 원자력 추진 기술이 더해지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추진잠수함을 자체 건조하는 국가가 됩니다.
이는 단순히 무기 체계 하나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조선 기술과 원자력 기술이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미국과의 핵연료 공급 협정을 마무리해야 하고, 소형 원자로 설계와 안전성 검증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미 보유한 조선 기술과 원자력 발전 경험을 고려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로 보입니다.
트럼프의 즉흥적 발언으로 시작된 혼란은 오히려 한국의 기술 자립 의지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