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도쿄돔에서 오랜만에 한일전 2연전을 중계했습니다.
왜 오랜만이냐면 우리는 지난 2019년 프리미어 12에서도 슈퍼라운드 2차전과 결승전을 연달아 붙으면서 토, 일에 2연전을 치렀던 적이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이번에 지지는 않았지만 연패를 끊지도 못했습니다. 무승부는 그전 결과가 이어지니까요.
우리의 강점도 봤지만 보완해야 할 과제도 뚜렷했던 2연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들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도쿄돔.
저는 도쿄돔을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여기에 갔을 때는
'뭐 그냥 좀 큰 실내 체육관이네.'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이 건축물이 과연 1988년에 지은 건축물이 맞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 방문에서 놀란 점은 대형 전광판이었습니다.
2021년에 새로 설치한 전광판인데 지난 WBC때도 물론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대회의 주체가 MLB여서 위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거든요.
이번에는 친선전이고 일본의 자국인들이 전광판을 운용을 해서인지 140m 넓이의 전광판에 다양한 자료를 동시에 표출을 하는데 보기 좋더라고요.
현장을 찾은 관중들도 편안한 관전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앰프를 쓰지 않고 육성과 밴드의 응원만 하는 일본야구의 특징이 도쿄돔에서는 실내라는 특징과 더불어 육성이 메아리가 되는 장점과 함께 상대팀에게는 위압감이 되기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이전 '스즈키 세이야'나 '야마다 데츠토' 같은 떼창응원이 극대화되는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는 '고조노' 선수 한 명 정도였고, 최고 인기 선수인 '오카모토' 선수가 이틀 동안 세 타석 밖에 안 들어와서 우리 대표팀 투수들이 상대의 응원에 큰 영향을 받을 일은 크게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경기장의 분위기도 지난 방문 때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초록색을 모티브로 한 불빛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오래된 건물이지만 이걸 어떻게 보수해서 쓰느냐에 따라서 확실히 쓰임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트라이크존은 왜 좁았나?
추후 확인을 해본 결과 실제 이 대회에서 적용된 스트라이크 존은 실제로 좁았습니다.
이번 2연전은 메이저리그의 주심이 심판을 봤는데 올시즌 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 존에 변화가 있었던 겁니다.
'버퍼 존'(Buffer Zone)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유를 주는 공간입니다. 2024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는 버퍼 존을 홈플레이트 바깥쪽 끝에서 약 2인치(약 5cm) 가량 적용을 했고, 버퍼 존에서 심판이 오심을 하더라도 심판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2025년 이 버퍼 존이 줄었습니다. 2인치에서 0.75인치(약 1.9cm)로 적용이 됐습니다. 주심들도 일하기 빡빡해진 거죠. (참고로 우리 ABS 시스템에서의 좌우 여유는 홈플레이트 좌우로 각각 2cm를 더 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는 버퍼 존이 아닙니다. 우리 시스템상 저 여유 공간에는 던지면 무조건 스트라이크입니다.)
버퍼 존이 줄어드니 당연히 심판들도 존을 좁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버퍼 존이 줄어든 부분을 면적으로 치면 약 100㎠ 이상이라고 합니다.

제가 중계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1차전을 끝내고 전해 듣기를 일본의 중계방송 화면에는 S 존이 화면상 우하단에 표출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현장에서도 트랙맨을 통한 공의 스트라이크 존 통과지점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과연 중계 화면상의 S 존과 트랙맨 존에서는 어떻게 보였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중계를 하면서는 바깥쪽 공에 대한 판정이 정말 빡빡해 보였거든요.
2연전을 모두 마치고 KBO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좌우에 있어서 경기 당 오차가 있었던 부분은 공 2~3개 정도였습니다."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즉, 이렇게 좌우가 빡빡한 스트라이크 존은 WBC에서도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우리가 적응해야 할 문제가 됐습니다.

투수들의 반응
투수들은 일본 타자들의 전반적인 대처에 놀랐다고 합니다.
"변화구에 반응을 해야 하는데 반응이 없어서 놀랐습니다."
뭔가 좀 움찔움찔이라도 해야 변화구에 반응을 하는구나 생각을 하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타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 투수들을 당황케 만든 것은 바깥쪽 빠른 공에 대한 대처였습니다.
"완전 끝으로 들어갔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걸 너무 쉽게 커트하니까요. 안 그래도 (존이) 좁아서 더 빼면 볼일 것 같은데 어떡하지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1차전의 경우 변화구가 약간이라도 높으면 전부 볼이었던지라 2차전에서는 변화구 높이까지 생각을 해야 했기 때문에 투수들은 1,2차전 내내 머리가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되는데 우리 투수진에게는 큰 숙제가 남게 됐습니다.
1. 좁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승부를 해야 하고,
2. 빠른 공은 구위를 올려야 하며,
3. 변화구는 움직임을 더 예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천적은 일본 포수
올림픽 때도 WBC때도 언제나 그랬습니다. 우리 선발투수가 초반 호투를 펼치면서 희망을 보던 시점에 하위 타선에 배치된 포수가 등장했습니다. 카이가 그랬고, 나카무라가 그랬습니다.
그럼 그 포수가 선발투수와 7~8구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다가 매우 기분 나쁜 안타 - 바빕타 혹은 빗 맞은 안타 - 를 허용하고 그 다음부터 우리 투수들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패턴이 나오더군요. 이번 일본 대표팀에는 4명의 포수가 있었는데 1차전에서는 4번 타순에 대타로 포수를 연속 기용 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정말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결국 그 4 포수 중 한 명인 기시다에게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고 1차전을 내줬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잡기 위해서는 포수들을 철저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포수들도 일본 포수들 같은 활약을 펼치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그래서 2차전 우리 포수들의 활약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선발 포수로 나선 최재훈은 볼넷 2개를 얻어내면서 일본 투수들을 괴롭혔고, 대타로 타석에 들어간 박동원은 희생플라이 타점을 통해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으니까요.

우리 공격력은 상위레벨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지난 2023 WBC에서 일본은 7경기를 치렀습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4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의 7경기 중 두 번째로 많은 실점이었습니다. (1위 멕시코 5점)
대부분의 대회에서 이랬습니다. 우리가 비록 오랜 기간 패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많은 득점을 올리고, 또 초반 득점을 통해서 기선을 제압하는 쪽은 항상 우리였습니다. 언제나 공격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일본팀에게
'일본 투수진 만나면 몇 점이나 뽑을 것 같아요?'
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들은
'많아야 3~4점'이라고 답할 겁니다.
이번 대회에서 1차전 4득점, 2차전 7득점은 정말 대단한 공격력을 보여준 겁니다.
특히, 4개의 홈런 중 절반을 책임지면서 이승엽, 김하성에 이어 세 번째로 한일전 2개의 홈런을 기록한 안현민 선수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우리 새로운 간판이 됐습니다. 대표팀의 새로운 강한 2번의 전형을 보여준 거죠.
팀을 패배에서 구한 김주원 선수 또한 국제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2군을 상대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그냥 어떻게든 우리 대표팀을 깎아내리고 싶은 겁니다.
일본도 WBC 멤버들을 뽑고 있는 과정이고, 이 대회는 거기에 들어갈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자리였습니다.
양대리그 타격왕과 최다안타 1위가 포진하고 있었고, 최근 5년간 3번의 홈런왕을 차지하면서 포스팅을 기다리고 있는 슬러거도 있었습니다. 투수에서는 동나이대의 오타니와 엇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는 투수를 필두로 젊은 왼손투수들과 일본의 양대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도 등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홈런을 때린 겁니다.
물론 야마모토, 오타니, 사사키의 다저스 투수 트리오나 시카고 커브스의 스즈키와 보스턴의 요시다 같은 타자들은 없었지만 우리도 메이저리거들이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주말에 붙은 일본의 멤버들을 2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와 진심으로 상대해 준 그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이번 중계방송에서는 SBS와 MBC의 중계진이 함께 했습니다.
경기 전에 그라운드에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정보도 주고받았습니다.
사실, 저희 직업은 굉장히 외로운 직업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경기장 안에 우리 밖에 없거든요.
특히 정규시즌 중계방송을 할 때는 경기장에 캐스터는 저 혼자 뿐일 때가 많아서 혼자 둥둥 떠다니는 고독한 섬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섯명이나 됐으니까요.
자주 벌어지지 않는 야구 국제 대회인데 다음 국제 대회 때도 많은 방송사들 중계진이 같이 하면서 더 좋은 분위기로 우리 선수들에게 경기 전에 더 많은 힘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준비를 하면서 이번에는 일본 상대 연패를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중계방송을 하면서 초반 분위기를 탈 때는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본도 바로 반격을 해오면서 그 생각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지만요. 그 결과 아쉽게 무승부로 연패를 끊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연패를 끊기를 바라면서 중계방송 후기를 마칩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