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체성 드러내는 도시색…뉴욕은 노랑, 서울은 ‘오락가락’
매년 바뀌는 서울 도시색, 올해는 스카이코랄 내년엔 그린오로라…“정체성 혼돈”
세계 주요 도시와 국가들이 고유의 색채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서울은 매년 도시색을 바꾸면서 서울시민은 물론 외국인들의 혼란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서울을 대표하는 색으로 ‘그린오로라’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름 가로수의 생명력을 담아낸 색으로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서울을 대표하는 색은 한강의 노을빛을 형상화한 ‘스카이코럴’이었다.
서울시가 매년 도시를 대표하는 도시색을 바꾸고 있는 반면 해외 주요 도시는 수십 년간 일관된 색채로 자연스럽게 시민의 일상에 스며들어 도시의 색을 구축해왔다. 예컨대, 런던은 전통적으로 빨간색 우체통과 이층버스 등으로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 런던의 빨간색은 권위와 힘의 상징이다.
피터 애크로이드의 책 ‘런던의 색깔’에 따르면 빨간색은 런던을 대표하는 색이다. 금융과 권위를 상징하는 도시에 가장 적합한 색으로 평가된다. 19세기 초 택시부터 시작해 기둥, 지하철, 우체통, 전화박스 등 도시 곳곳에 빨강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런던하면 자연스럽게 빨간색을 떠올릴 수 있다.
뉴욕주 역시 공식 브랜딩 가이드를 통해 골드와 블루를 도시의 주요 색으로 정해 각각 영감과 진정성이라는 뜻을 담아 도시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뉴욕주의 번호판 색깔이다. 공교롭게도 뉴욕시의 상징이 된 황금빛의 노란 택시는 원래 먼 거리에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선택된 색이었다. 이제는 뉴욕의 번잡한 거리와 도시 생활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특히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1976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통해 노란 택시는 뉴욕시의 색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도시를 넘어 국가의 사례도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역사가 담긴 국기 색을 강조해왔다. 이탈리아어로 일 트리콜로레(Il Tricolore) 불리는 이탈리아 삼색기는 각각 깊은 의미를 지닌다. 녹색, 흰색, 빨간색은 각각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평야, 알프스의 눈,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한다. 거리의 소화전도 삼색일 만큼 색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음식에도 활용해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내왔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녹색 바질, 하얀 모차렐라 치즈, 붉은 토마토를 통해 국가의 상징색을 음식에 담아냈다. 카프레제 샐러드와 콘페티라 불리는 설탕 아몬드도 세 가지 색을 활용했다.
국기의 색을 드러내기 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도 있다. 네덜란드의 국기는 파랑, 하양, 빨강으로 이뤄졌지만 네덜란드의 왕실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을 국가 정체성으로 승화시켰다. 네덜란드의 오렌지색은 왕실 가문인 오라녜-나사우 가문에서 유래했다.
주황색을 뜻하는 ‘orange’는 네덜란드어로 ‘오라녜’로 읽히는데 현 왕실의 시조가 되는 빌렘 판 오라녜(오렌지의 윌리엄)의 이름과 연결된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오렌지색은 자연스럽게 네덜란드의 정체성이 되었다. 오늘날 축구 국가대표팀이 ‘오렌지군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국왕의 날과 같은 국가적 행사에서 네덜란드인들이 오렌지색 의상을 입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자부심의 표현이다.
도시나 국가의 상징색은 역사와 문화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매년 새로운 색을 발표하고 기업과의 협업으로 상품을 제작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통적인 역사와 현대적 접근 사이에서 서울만의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형건 수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 전공 교수는 “런던이나 뉴욕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빠른 속도와 변화가 특징이다”며 “데이터 기반으로 색상을 추출하고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는 현재의 방식 자체가 서울다운 접근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재생의 한 예시인 뉴욕 하이라인과 서울로7017처럼 비슷한 프로젝트도 리서치 기간이 10배 가까이 차이 난다”면서 “도시의 색채 브랜드를 확립하려면 시간을 두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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