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시선집 ‘너에게 쓴다’ 출간…등단 60주년의 시적 편지

곽성일 기자 2025. 8. 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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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깊은 여운의 시 61편 수록…삶과 사랑의 궤적 담은 정제된 언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존재와 위로의 시학,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
천양희 시선집 '너에게 쓴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 잎 진 자리에 새 앉았다 너에게 쓴다."

이 시 한 편에, 한 시인이 써내려온 60년의 시간이 담겼다.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천양희 시인이 직접 고르고 다듬은 시선집 '너에게 쓴다'(창비 刊)가 출간됐다.

이 시선집은 짧고 간결한 시어 안에 깊은 사유와 여운을 담아온 천 시인의 시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총 8권의 시집에서 엄선한 61편의 시는 모두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표제작인 '너에게 쓴다'는 1998년 출간된 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에 수록됐던 작품으로, 2020년 '광화문글판'에 실리며 대중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은 시다.

이번 시선집을 위해 시인은 일부 시구를 다시 다듬고, 함축과 울림을 더하는 작업을 거쳤다. 특히 같은 단어를 다른 뉘앙스로 반복 사용하는 시적 장치는 독자에게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어준다. '쓰고'와 '쓴다'의 반복처럼, 시는 감정과 언어의 중첩 위에 자신만의 정서를 쌓는다.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 너에게 쓴 마음이 / 벌써 길이 되었다"는 시구는 한 존재를 향한 마음이 결국 '삶의 궤적'이 되었음을 담담히 고백하는 동시에, '짧은 시'의 힘을 선명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천 시인의 시는 간결한 언어로 일상의 이면과 삶의 진실을 꿰뚫는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 저 소리 뒤편에는 /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뒤편」 중)와 같은 시는 한 장면 뒤에 감춰진 수많은 '무명의 마음들'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든다.

그는 운문으로 된 '시인의 말'에서 "한순간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 짧은 시였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이어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곧, 지금의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기도 하다.

천양희는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등 서정성과 존재의 의미를 담은 시집을 발표해 왔다. 삶의 아픔과 고요한 희망을 포착해내는 시편들은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는 그녀의 시구처럼, 절망 속에서 빛나는 생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다양한 문학상을 통해 입증되어 왔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청마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7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문학의 본산에서도 그 위상을 인정받았다.

85세가 된 지금까지도 천양희는 자신을 "시를 통해 자신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시선집은 그런 그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삶에 지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편지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