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 몰락과 함께 사라진 ‘우주 반지’

약 3000년 전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의 권력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철로 반지를 만들어 지위를 과시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명 ‘우주 반지’의 유행은 기원전 1200년 무렵 궁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함께 쇠퇴한 사실도 파악됐다. 궁전 체제란 미케네 문명 후기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 전체를 의미하는 용어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MNHN)은 청동기시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운철(운석에서 얻은 철) 장신구를 분석한 보고서 ‘기원전 2000년기 그리스의 철(Iron in Greece in the second millennium B.C.E.)’을 국제 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8월 호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 에게해의 섬들, 크레타섬의 33개 유적에서 나온 철제 유물 91점을 X선 형광분석기로 조사했다. 그 결과 13점에서 상당량의 니켈이 검출됐고, 이 가운데 9점은 운철 기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1점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나머지 3점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운철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평가된 반지 <사진=마티외 구넬>

흥미로운 점은 니켈이 검출된 13점이 모두 반지라는 사실이다. 연구 대상에는 검과 단검, 펜던트, 핀 등도 포함됐지만 운철 후보는 반지에 집중됐다. 대부분 금·은·청동을 함께 사용한 다금속 장신구였고, 톨로스묘나 방형묘에서 금제 용기와 호박 장신구, 인장 등 고급 부장품과 함께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운철 반지가 미노아와 미케네 궁전 사회 엘리트의 권력과 지위를 상징했다고 봤다. 청동기시대 후반에는 운철과 제련철의 사용 영역도 크게 겹치지 않았고, 제련철은 상대적으로 덜 정교한 물건에 쓰이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철을 일반 철과 다른 특별한 재료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에 조사된 유물 일부. 운철 함유 가능성이 높은 것들에 빨간색 점이 찍혀 있다. <사진=마티외 구넬>

운철의 공급처로는 이집트가 거론됐다. 그리스에서는 운석 확보가 쉽지 않은 반면, 사막이 넓은 이집트는 운석이 보존되기 좋은 환경이다. 당시 동부 지중해에는 이미 광범위한 교역망이 형성돼 있었고, 투탕카멘 무덤에서도 운철로 만든 단검이 발견됐다.

이런 운철 반지의 유행은 기원전 1200년 무렵부터 급격히 식었다. 미케네를 비롯한 에게해의 궁전 체제가 무너진 때와 대체로 겹친다. 연구팀은 정치·사회·경제적 혼란이나 교역망 변화가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운철 반지를 선호하던 유행 자체가 자연스럽게 끝났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청동기시대 그리스 상류층이 사용한 장신구의 재료 운철은 이집트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측됐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학계는 이번 연구가 현대 분석법을 이용해 그리스 청동기 철제 유물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운철 기원을 확인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전에는 귀중한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대규모로 분석하기 어려워 그리스의 운철 사용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MNHN 마티외 구넬 연구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희귀 금속으로 권력을 과시했던 청동기시대 엘리트들은 궁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며 “한때 이들의 특별한 지위를 상징한 우주 반지도 역사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춘 듯하다”고 전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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