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1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난 정수근은 성동초, 건대부중, 덕수상고를 거쳐 프로야구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는 말썽을 자주 부리고 공부에도 흥미가 없던 아이였지만, 친구가 입은 야구 유니폼을 보고 멋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졸라 야구부에 들어갔다. 당시 또래보다 작았던 그는 불리한 체격을 극복하려고 검도장 거울 앞에서 밤늦게까지 스윙 연습을 하며 야구에 매진했다.
대주자에서 시작해 리그 최고 리드오프로

고등학교 졸업 후 OB 베어스에 입단한 그는 신인이었지만 빠른 발을 앞세워 대주자와 대수비로 활용되었다. 특히 1995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0회에 3루타를 날리며 쐐기를 박았고, 데뷔 시즌부터 우승 반지를 끼게 된다.
이듬해에는 주전 1번 타자로 올라서며 타석 수, 득점, 최다안타 등 주요 부문에서 리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도루는 이종범에 이어 리그 2위. 1997년에는 20살의 나이로 올스타에 선발됐고, 이후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골든글러브, 올림픽, 그리고 전성기
1999년에는 타율 3할 1푼, OPS 0.831, WAR 5.5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해 동메달을 따고 병역 혜택을 받은 그는 2001년에도 다시 골든글러브를 거머쥐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특히 6년 연속 40도루를 달성하며 리그 최고 리드오프로 자리매김했고, 팬 투표에서 이승엽을 제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FA 최고액, 그리고 롯데로 이적

2003년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은 정수근은 롯데 자이언츠와 6년 총액 40억 6000만 원이라는 당시 역대 최고액 FA 계약을 체결한다. 롯데는 최하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고, 정수근은 이적 첫해부터 빠른 발과 활력 넘치는 플레이로 부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즌 초반 리그 1위를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올스타전에서는 MVP에 해당하는 미스터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반복되는 음주 사건과 추락의 시작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문제는 그라운드 밖에서 시작됐다. 2004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중 폭행 사건에 연루돼 경찰에 연행됐고, 이어서 밝혀진 음주운전 사실과 은폐 시도는 여론의 분노를 샀다. 결국 KBO는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후 복귀했지만 팀 내부에서의 갈등, 훈련 불참, 감독과의 마찰 등으로 점차 팀 내 입지가 좁아졌고, 경기 외적인 문제로 다시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됐다.
결정적 일탈과 두 번째 무기한 징계
2008년에는 주장으로 선임됐지만 만취 상태로 병원 직원과 경찰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롯데는 그를 임의탈퇴 처리했다. KBO는 무기한 실격 징계를 내렸고, 1년 후 롯데가 해제를 요청해 복귀했지만, 곧이어 부산 호프집에서의 소란 혐의로 또다시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았다. 결국 정수근은 2009년, 겨우 32살의 나이에 유니폼을 벗고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