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임종 때 잠시도 울지 않는 자식들의 공통점 4가지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자식이 있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슬픔은 눈물의 양으로 판단할 수 없다.

너무 슬퍼서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미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한 사람도 있다. 부모의 임종 앞에서 울지 않는 자식에게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1. 부모가 오래 아파 이미 수없이 이별을 준비했다

몇 년 동안 병원을 오가며 부모가 조금씩 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본 자식이 있다. 응급실에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최악의 순간을 생각했고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혼자 울기도 했다.

그래서 막상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면 오히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멍해질 수 있다.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날이 오기 전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이다.

2. 마지막까지 자신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제들에게 연락하고 병원 이야기를 듣고 장례식장과 필요한 절차까지 챙기는 사람이 있다. 다른 가족들이 울고 있을 때도 "지금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눌러둔다.

특히 집안에서 늘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온 사람일수록 슬픔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장례가 모두 끝난 뒤 부모의 빈집이나 유품을 정리하다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3.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모든 부모와 자식이 따뜻한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폭언과 무시를 겪었거나 평생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온 자식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부모의 죽음은 단순한 슬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움과 원망,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자신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죽음 앞에서 반드시 슬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4. 아직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임종 순간에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던 사람이 며칠 뒤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머리로는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계속 사람을 맞이하고 평범하게 식사하며 대화하기도 한다. 그러다 무심코 부모에게 전화를 걸려 하거나 집에 돌아와 부모의 물건을 보는 순간 비로소 빈자리를 실감한다. 슬픔은 반드시 죽음과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두 끝난 뒤 아주 늦게 시작되기도 한다.

부모의 임종 앞에서 많이 운다고 더 효자인 것도 아니고 울지 않는다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부모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에 무너지고 누군가는 장례가 끝난 뒤 울며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리워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장 슬픈 순간을 바라볼 때는 눈물보다 그 사람이 부모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슬픔에는 정해진 표정도, 반드시 흘려야 하는 눈물의 양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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