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일본 오키나와 킨 구장에서 마무리캠프를 치르고 있는 KIA 타이거즈. /김여울기자

스토브리그다. 말 많은 시간이다.

최대어로 꼽히던 박찬호와 강백호의 거취가 확정되면서 시끌시끌하던 FA 시장은 조금 잠잠해질 것 같다.

하지만 야구 경기는 없는 겨울, 야구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끝나 버린 시즌에 대한 아쉬움이든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든 이런저런 이야기로 스토브리그가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가 잠잠해졌다가 그렇게 시간이 갈 것이다.

그러다가 ‘벌써?’라는 놀라움 속에 스프링캠프 선수단이 비행기에 오를 것이고, ‘아니 또 벌써?’라는 마음으로 개막전을 맞을 것이다.

‘썰’이 난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진짜 정보가 슬쩍 올라오기도 하고, 어쩌다 문고리를 잡아서 진짜가 되는 썰도 있고, 근거 없는 썰이 생산·재확산되기도 한다.

말이 많은 곳, 말이 많은 시간 누군가는 그 말에 상처를 입는다.

KIA 타이거즈의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를 다녀왔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 이범호 감독과 1군 코칭스태프 앞에서 뭔가를 보여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자체로 특별한 시간일 것이다.

특별한 기회라고 해도 하루하루가 쉽지는 않다. 기술 향상,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위해 뛰고 또 뛰고 손이 부르터지게 공을 때린다. 간절함으로 공 하나 하나를 던지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쫓고 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온몸이 부서지게 뛰고 노력한다고 해서 1군 무대가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

지켜보는 내가 힘들 정도로 빠르고 바쁘게 훈련이 진행됐지만 삼성 라이온즈와의 연습경기를 보면서 탄식을 했다.

정교함이 떨어진 투타, 결과는 참담한 0-16 대패였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했을 선수들에게는 이를 더 악물게 하는 동기부여가 됐을 수도 있고, 큰 벽을 느낀 좌절의 시간이 됐을 수도 있다.

프로니까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또는 운이 부족해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부족했든 결국 그 결과는 선수의 책임이 된다.

이들도 어떻게 보면 직장인이다.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직장인이다. 맡은 일에 대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진다.

물론 결이 다른 직장이기는 하다. 팬들이 있어야 존립할 수 있는 직장. 그런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선수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다.

휴식 시간에 한 선수가 조심스럽게 “기자님 악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의미 없는 말은 의미 없게 그냥 흘려보내는 게 좋다”라는 식으로 답을 해줬다.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말은 쉽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듣는 못된 말은 아프다. 비난과 비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끔은 억울한 경우도 있다. 잘 알지 못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잘못된 정보와 판단으로 쏟아낸 비난의 말. 반박도 하고 싶고 애가 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으로 귀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것일까?

2016년 8월 2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처음 끝내기 주인공이 된 뒤 덕아웃에서 눈물을 보인 박찬호. /김여울 기자

이제는 두산 선수가 된 박찬호는 유독 많은 악플에 시달린 선수 중 하나다.

사실 박찬호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일반적인 인터뷰를 하는 선수는 아니다. 솔직하다. 자신에 대해, 자신의 생각에 솔직하다.

겸손함을 원하고, 정해진 틀에 벗어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불편한 선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솔직했다.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돌발적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KIA의 유격수라는 이유만으로도 박찬호는 악플을 받았다.

남다른 수비로 청소년대표로도 활약했던 박찬호는 내야를 전전하다, 힘을 키워서 주전 유격수가 됐다. 지난해에는 유격수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럼에도 ‘유격수’ 박찬호는 욕을 먹었다. 유격수라서.

시즌 중반 박찬호는 “박수만 받으면서 야구를 하고 싶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시장 상황상 ‘인기 많은’ 예비FA가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때, 여기에 ‘아빠’라는 또 다른 역할에 박찬호의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에게는 아빠에 대한 악의적인 글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게 박찬호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시즌 중반 몇 년을 시달린 박찬호는 결국 악플러를 고소했다.

물론 박수만 받으면서 야구를 할 수는 없다.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날도 있고, 황당한 실수로 고개를 숙이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한 비판은 기꺼이 수용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글들이 아무렇지 않게 쉽게 쓰이고 있다.

생각 없이 의미 없이 또는 악의적으로 쓴 글이 ‘사실’이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생각 없이 글을 읽고 인식한다.

지난 16일 삼성과의 마무리캠프 연습경기에서 9회초 대타로 나와 안타를 기록한 박정우. /김여울 기자

얼마 전 박정우가 다시 한번 뜨거운 이름이 됐다.

박정우의 올 시즌 출발은 좋았다.

프로 9년 차에 처음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그는 “긴장해서 넘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했다.

처음 맞는 개막전이라 식전 행사에서 이름이 불려 그라운드도 달려 나갈 순간이 긴장된다는 이야기였다.

팀의 위기 상황에서 ‘함평 타이거즈’의 힘도 보여주면서 박정우는 외야에서 입지를 넓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변명할 수 없는 황당한 주루사를 남겼다. 그리고 SNS에서 악플을 단 팬과 설전을 벌이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박정우의 이름은 엔트리에서 사라졌다. 그라운드에서도 박정우는 자취를 감췄다.

성숙하지 못한 대처로 박정우는 기회의 시즌을 스스로 날렸다.

그렇게 박정우는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았다.

지난 10월 울산에서 진행된 KBO 가을리그에서 박정우는 5할 타자로 맹활약했다. 23타수 13안타 타율 0.565.

하지만 몸을 날리는 수비를 하다가 펜스에 부딪힌 박정우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을리그에서 퇴장했다.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으면서 아웃은 만들었다.

박정우는 마무리캠프 연습경기에서도 안타를 만들었다. 9회 대타로 들어가 만든 팀의 두 번째 안타.

잃어봤던 만큼 얼마나 야구가, 그라운드가 간절한지 알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박정우는 “두 달 경기 뛰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정말 간절하게 뛰었다. 팀에 피해를 끼쳤으니까 더 잘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지고 있다.

박정우는 “집이 경기장 근처라 야구를 하는 날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이 타서 집에 있지 못했다”고 후회 가득했던 시간도 이야기했다.

그만큼 간절하고 감사함으로 마무리캠프를 치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황당한 소문의 주인공이 됐다.

직접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는 소문에 박정우는 뜨거운 이름이 됐다.

트레이드 논란이 불거지자 박정우는 오히려 “기자님 저 트레이드 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박정우도 구단도 알지 못하는 그냥 악의적인 헛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 없이 마치 사실이라도 되는 듯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아니면 말고’라는 가벼운 말이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바위 같은 무게감의 말이 됐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잘못을 한 선수니 욕을 먹는 것 당연하다”는 또 다른 악플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퍼진 잘못된 정보는 바로 잡기 어렵다.

“아니다”라고 해명을 하고 수습하려고 해도 이미 상황은 끝나버린 것이다.

가짜가 퍼지는 순간 진짜가 된다. 많은 사람은 잘못된 정보를 진짜로 알고 살게 된다. 불행하고 무서운 일이다.

가벼운 생각, 쉽게 쓴 글에 선수들과 팬들까지 상처를 받고 있다.

악플이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 되면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도 호소문을 발표하고 강경 대응도 예고했다.

악플이 팬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건전한 비판 속에 선수도 야구도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