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나라 다 모였다더니”…이젠 1% 성장도 어렵다는 이곳

이재철 기자(humming@mk.co.kr), 문가영 기자(moon31@mk.co.kr) 2024. 10. 17. 22: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U정상회의 브뤼셀서 개막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들은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숙의에 착수했다. 1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정상회담에선 경제 혁신과 통합 위기에 직면한 EU의 현재 분위기를 반영해 경쟁력 강화, 난민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룬다. 첫날부터 회의장에는 혁신 동력 실종과 분열 등 내부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정상들은 지난달 EU집행위원회 의뢰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제시한 ‘유럽 경쟁력 강화’ 보고서의 주요 제안들을 집중 논의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규제 문턱은 높고 민간 혁신 투자는 저조한 유럽의 현실이 경제를 ‘실존적 위기’ 상태로 몰고 있다며 유럽 국내총생산(GDP)의 4%가 넘는 연간 7500억 유로 이상을 민간 투자에 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대로 가다가는 유럽 경제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3년 이내에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드라기 보고서 제안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27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코로나19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시작된 2021년 6.2%를 찍은 뒤 2022년 3.3%, 2023년 0.4% 등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선진국 성장률 평균치인 1.7%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유럽 성장엔진 독일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등 EU 회원국들은 경기침체를 벗어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높은 생산성의 미국 경제, 그리고 역동적 산업구조 변화를 추구하는 아시아, 걸프 국가들의 움직임을 지목하며 “유럽은 자신이 가진 단일시장의 힘과 선한 영향력에 보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이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목되는 것은 경기 침체 여파 속 EU 회원국간 분열 양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EU의 ‘통합’ 정신이 약화되면서 전체적인 역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각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자 국수주의가 두드러지면서 산업규제·관세 등 각종 정책 결정에 있어서 하나된 목소리가 실종된 상황이다. 이 가운데 난민 유입으로 사회 혼란마저 가중되면서 정치권에서도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EU가 인공지능(AI) 등 기술 관련 규제를 의욕적으로 도입하면서 미국 등 빅테크 업체의 진출은 물론 역내 혁신산업 양성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가와 연구진들은 이례적으로 EU의 AI규제를 비판하는 공개 서한을 냈다. 유럽의회가 지난 5월 통과시킨 AI법을 겨냥한 것이다. AI법에는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가 개인정보 보호, 차별적 표현 금지 등 규제를 위반하면 전 세계 매출의 최대 7%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스포티파이, 에릭슨, SAP 등 유럽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CEO를 포함한 49명의 기업 임원, 교수 등이 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유럽이 일관성 없는 규제로 AI 부문에서 더욱 뒤처질 위험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부문은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속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EU집행위원회가 추진한 대중국 전기차 고관세 부과 투표는 역설적으로 회원국 간 각자도생병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 시장에 자국 브랜드 차량을 팔아야 하는 독일과 스페인 등 5개국이 반대표를 행사했고, 중국발 보복 규제에 부담을 느낀 12개 회원국도 무더기 기권표를 던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EU 회원국들이 국경과 통상 등 주요 정책 현안에서 의견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양상을 지목하며 “정치적 마비, 외부 위협과 저성장의 조합이 글로벌 강국이 되려는 EU의 야망을 종식시킬 판”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난민 문제를 놓고도 회원국간 신경전이 거세다.

지난 10여년 간 유럽으로 난민이 몰려들면서 국경 검문과 난민 정책을 둘러싼 분열이 두드러지고 있다. EU는 작년 말 회원국 간 난민 배분 방법을 담은 협약을 진통 끝에 가까스로 타결했으나, 최근 중동 분쟁으로 난민 유입이 급증하면서 개별 국가 차원에서 난민 정책을 강화하는 등 다시금 각자도생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지난 15일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일시 중단하는 계획을 포함한 난민 정책 패키지를 공개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11일 유럽 최초로 역외 ‘이주민 송환허브’를 알바니아에 개소했다. 더 이상 난민을 받지 않고 이미 받은 난민은 제3국으로 내보내려는 움직임이다. EU는 최근 입장을 선회해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역외 송환허브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4일 이 모델을 EU에 확대 적용할 것을 회원국에 공식 제안했다.

반난민 정서가 고조되면서 유럽 전반에서 극우 정당의 득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이 28.8%를 득표해 제1당에 올랐다.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정당으로, 줄곧 비주류에 머물렀으나 지난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했다. 자유당은 ‘오스트리아의 요새화’를 기치로 내걸고 동질적인 국가를 달성하기 위해 불법입국자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