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두 통짜리 기사
[사실과 의견]
[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무지몽매한 상태로 덜컥 기자가 된 나는 배움이 갈급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주변을 살피며 따라 했다. 살피고 따라 하기 바쁜 중에 어느 선배 기자의 말이 마음에 콱 박혔다. “케이스 세 개면 사회면 톱을 만든다.”
데스크가 오전 10시쯤 '야마'를 하달하면, 기자들은 오후 3시까지 사례를 찾아 메모로 올렸다. 딱 맞는 사례를 보고하면 “잘 물어온다”는 칭찬을 오후 4시쯤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데스크는 메모를 엮어 일필휘지했다. 오후 6시에 초판 기사가 나왔다. 야마를 잡아채는 감각, 엉성한 사례를 수려하게 엮는 필력, 마음껏 주무른 기사의 바이라인에 제 이름 대신 후배 이름을 올리는 겸양까지 갖춘 데스크를 나는 흠모했다.
해외 언론계도 비슷한 관행을 '전화 두 통 기사'(two-phone call report)라고 부른다. 차이가 있다면, '전화 두 통'은 부실한 기사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고, '케이스 세 개'는 노하우로 통한다는 점에 있다. 무지하던 시절에도 의문은 있었다. 저열한 학점의 학부 전공을 드러내기 창피하여 속으로만 되새기던 사회학적 궁금증이었다.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수를 조사하여 패턴을 발견하거나, 개별을 조사하여 특성을 발견한다. 둘 다 주로 인터뷰 방법을 쓴다. 규격화된 공통 질문을 많은 이에게 던지면 설문조사이고, 개방적이고 깊은 질문을 소수에 집중하면 심층 인터뷰다. 한두 통의 전화로 사례 서너 개를 건지는 일은 양적 방법도 질적 방법도 아니었다.
현대 저널리즘은 사회과학 방법을 일상적 사회 이슈에 적용해 보겠다는 일이다. 뉴욕타임스를 인수하여 재창간한 아돌프 옥스의 말이 그 이상을 대표한다. “다른 신문이 성범죄를 보도하면 외설이다. 뉴욕타임스가 그걸 보도하면 사회학적 연구다.” 물론,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는 저널리즘이라는 목표 자체가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아직 망상을 접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당, 선거, 숙의의 이상을 포기할 수 없는 정치학자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사회과학의 방법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현대 저널리즘의 토대가 사라지고, 그리되면 기자 직업도 사라진다. 아마 저널리즘 교수도 쓸모없어질 것이다. 내 밥그릇 지키겠다는 이 글이 밥그릇 걱정하는 기자에게 닿는다면, 우리는 좋은 인터뷰의 방법을 함께 궁리할 수 있다.
우선, '(커)멘트 잘 따는 방법'은 없다.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번에 분명히 답하고 싶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주렁주렁 인용문을 매달고 있어, 쉽게 따기 참 좋은 '멘트 나무' 같은 건 세상에 없다. 그런 말을 끌어낼 특별한 질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인터뷰에서 최고의 질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라는 미국 기자가 답한 적이 있다. “인터뷰의 마지막 순간, '다음에 누굴 만나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좋은 인터뷰는 계속 누군가를 만나는 인터뷰다. 목격·관찰이 최고의 취재 방법이라고 예전 글에 썼지만, 분신술을 쓰지 못하는 기자가 모든 일을 목격할 순 없다. 인터뷰는 이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다만, 개인의 목격·관찰·체험에서 패턴을 발견하려면, 더 많은 이를 만나야 한다. 만날 때마다 특성을 발견해야 하므로 깊은 인터뷰도 필요하다. 게이 탈레시라는 미국 기자가 깊은 인터뷰의 노하우를 설명했다. “(인터뷰이인) 당신이 (기자인)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또한, (당신과 인터뷰하는) 나의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설명한다.”
인터뷰는 양질 전환의 방법이다. 많이 만나고 오래 만나면 좋은 기사를 쓴다. 전설적 기사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세이모어 허시는 50명 이상의 군인을 인터뷰하여, 직접 가보지 않은 베트남전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존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는 400여 명의 관련자를 인터뷰하여, 대통령 선거 캠프의 불법을 폭로했다.
많은 인터뷰, 깊은 인터뷰를 실행하는 첫 단계가 있다. '한 번에 따낸 멘트', '두 통의 전화', '세 개의 사례'를 권장하는 데스크에 대한 존경을 멈춰야 한다. 그런 인터뷰 관행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인식해야, 그걸 따라 배우는 일을 중단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수학적인 꿈을 품는 것이다. '언젠가 좋은 기사 쓸 수 있겠지' 같은 막연한 소망 말고, '10명을 인터뷰하여 기사 쓰겠다'는 물질적이고 양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30명, 50명, 100명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으면 더 좋다. 정확히 그 숫자만큼 우리 밥그릇의 양질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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