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현의 견제구] 신지 결혼에 집단 난입한 대중, 누구의 인생인가?

코요테 신지의 결혼 소식이 터졌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건, 예상 가능한 풍경이다.
댓글, DM, 기사, 유튜브, 심지어 멤버 빽가의 SNS까지.
“누나(언니) 결혼하지 마요.” “신지를 말려주세요.”
걱정과 만류, 그리고 불안.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이건 사랑인가, 오지랖인가?

한국 사회에서 유명인의 결혼은 언제나 공론장에 던져진다. 그 사람의 선택은 곧 대중의 안건이 된다.
신지의 예비 신랑이 이혼 경력이 있고, 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걱정은 걱정대로, 의혹은 의혹대로 증식한다.
“정말 괜찮은 사람 맞나?” “신지는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데, 이 걱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신지의 인생을 얼마나 알고 있나? 아니, 그녀의 선택에 대해 얼마나 책임질 수 있나?

대중의 걱정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진심이다.
신지는 오랜 시간 대중의 곁에 있었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 그 애정이 걱정으로 변하는 건 자연스럽다.
다른 하나는, 오지랖이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감정적 개입, 그리고 집단적 심사가 뒤섞인다. “우리가 더 잘 안다”는 착각,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는 과잉 보호 본능.
이 두 얼굴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사랑과 간섭의 경계는 흐릿하다.

신지의 결혼을 둘러싼 논란 역시 그렇다.
신이 아닌 이상 명쾌한 해답은 없다.
우리는 신지의 행복을 바란다면서, 동시에 그녀의 선택을 의심한다.
그녀가 내린 결정에 대해, ‘더 나은 선택’을 강요한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불안이 투영된 집단적 오지랖은 아닐까?

신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우리는 그저,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개입은, 결국 우리의 불안을 달래려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지 않을까?
신지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책임은 그녀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응원하거나, 조용히 지켜보거나, 각자의 자리에서만 걱정하면 된다.
신지의 인생과 결심은 그녀의 것이다.
글/구성: 민상현, 김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