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대장정 끝낸 R35 GT-R
내연기관 유지를 향한 희망
전동화 vs 하이브리드

2024년 3월 단종을 발표했던 닛산 GT-R의 현행 R35 모델이 지난 8월 26일,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마지막 생산분을 끝으로 생산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2007년 처음 출시되어 전작 R34에 이어 ‘재패니즈 고질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슈퍼카의 성능을 압도해 온 R35는 18년간 4만 8,000대 이상의 생산 기록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R35의 단종은 단순히 차종 하나가 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닛산의 상징이자 일본 자동차 공학의 정점 중 하나였던 GT-R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순수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전동화의 물결이 거세지는 시점에서, 과연 차기 ‘R36’ 모델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에 대해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연기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대부’의 바람


현행 R35 GT-R의 제품 기획을 총괄하며 ‘GT-R의 대부‘로 불리는 타무라 히로시는 R36 모델에 대한 개인적인 소망을 드러냈다. 그는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미래 GT-R에서도 내연기관의 힌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이는 R35 개발 당시 V6 엔진과 듀얼 클러치 변속기라는 과감한 선택을 주도했던 그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당시 그는 인라인 6기통 엔진과 수동 변속기를 고수하자는 내부 의견에 맞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혁신을 택했다.
타무라의 이와 같은 발언은 GT-R의 정체성, 즉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내연기관의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그의 바람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언이 닛산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닛산 경영진 역시 아직 R36 모델에 대한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다.
전동화와 하이브리드 사이에서 길을 찾다


닛산이 GT-R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 때문이다. 순수 내연기관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닛산은 이미 미래 GT-R의 청사진을 일부 제시한 바 있다.
2년 전 공개한 ‘하이퍼 포스(Hyper Force)‘ 콘셉트가 그 증거다. 이 콘셉트카는 1,341마력의 강력한 출력을 목표로 하는 ‘순수 전기차(EV)’를 표방한다. 닛산 디자인 유럽 부사장인 지오바니 아로바는 하이퍼 포스를 두고 2030년경에 달성할 수 있는 ‘대담하지만, 실현할 수 있는 꿈’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R36 모델의 출시 시기가 아직은 멀었으며,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타무라는 이에 대해 순수 전기차로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순수 EV로만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하이브리드 시스템 탑재 가능성에도 무게를 실었다. 이러한 발언들은 R36이 전동화 또는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35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V6 엔진을 택했듯, R36 역시 시대의 요구에 맞춰 혁신적인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아이콘, ‘고질라’의 재림을 기다리며

1969년 스카이라인 GT-R로 시작된 GT-R의 역사는 일본 스포츠카의 자존심이자 세계적인 명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R32, R33, R34 모델은 뛰어난 성능과 깔끔한 디자인으로 수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의 드림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07년, 스카이라인의 꼬리표를 떼고 독립적인 모델로 출시된 R35는 한때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포르쉐를 제치며 ‘고질라‘라는 별명을 더욱 공고히 했다.
R35는 단종되었지만, GT-R의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스카이라인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GT-R을 동경해 온 팬들에게 R36은 단순한 신차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R36이 내연기관의 심장을 이어받든, 전동화의 날개를 달든,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도 GT-R 특유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운전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질라’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닛산이 GT-R이라는 불멸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