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이름 땄는데, 이렇게 대박 날 줄은”…90년대 미팅 명소 그 햄버거집에 얽힌 사연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9. 1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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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70][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54] 데이브 토마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90년대 한국 진출한 원조 프리미엄 버거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하면 햄버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저희가 다룬 적이 있었던 맥도날드를 필두로 수많은 햄버거 브랜드가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몇몇 햄버거 가게들은 호시탐탐 한국 시장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요. 실제 뉴욕을 대표하는 햄버거가게 ‘쉐이크쉑 버거’는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프리미엄 버거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80년대 웬디스 한국매장
특히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파이브가이즈도 매장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데요. 처음엔 아침부터 길게 선 줄 탓에 먹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인기가 살짝 떨어진 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의 주인공 역시 햄버거 브랜드인데요.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사실 1980년대 한국에 일찌감치 진출했다가 지금은 사라진 햄버거 가게, 바로 ‘웬디스’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10대에 시작한 식당일
1984년 한국에 들어왔다 1998년 사라진 웬디스 버거는 사실 지금도 미국을 대표하는 햄버거 브랜드 중 하입니다. 그리고 웬디스를 창업한 사람은 미국 뉴저지주 태생의 데이브 토마스입니다. 아니, 웬디스라는 브랜드에 데이브 토마스란 이름이 없는데 왜 오늘 소개해드리냐면요. 웬디스 버거는 바로 그의 딸 웬디 토마스의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데이브 토마스
토머스는 1932년 7월 2일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렉스 토마스라는 사람에 입양된 그는 다섯살이 되던 해에 양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살았습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아버지를 따라 다녀야 했기 때문인데요.
하비하우스 레스토랑
그는 12살이 되던 해에 테네시주 녹스빌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설펐던 첫 아르바이트로 인해 결국 가게에서 잘렸고 그는 절대 회사에서 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어 15살이 된 그는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 있는 하비 하우스 레스토랑이란 곳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아버지가 또 이사를 가려하자 그는 자신은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며 그 곳에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레스토랑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서빙부터 재료 손질 , 청소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그는 이러한 식당 일을 통해 향후 자신이 창업할 가게의 기틀을 잡아나갔습니다.

한국전쟁, 요리사의 길을 열어준 기회
그리고 성인이 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징집을 기다리지 않고 18세의 나이에 미 육군에 자원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경력이 있던 그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쿡앤 베이커 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병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보직을 받았습니다. 교육 후 그는 서독으로 파견돼 조리병으로 일했고 2000명의 군인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렇게 국가를 위해 열심히 복무한 그는 1953년 전역해 자신이 일했던 포트웨인의 하비 하우스 레스토랑으로 돌아왔습니다.
KFC를 탄생시킨 웬디스의 비밀
그렇게 수석 요리사로 레스토랑에서 계속 근무하던 그 앞에 또 다른 패스트푸드 업계의 거물, 할랜드 샌더스가 나타납니다. 그는 바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창업한 하얀 양복에 흰머리를 한 그 할아버지입니다. 이미 한 차례 식당을 차렸다가 쫄닥 망했던 샌더스는 사실 포트 웨인 지역에 자신이 만든 치킨을 공급하기 위한 식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띈 곳이 바로 하비 하우스였던 것이죠. 소문에는 샌더스가 방문한 1009번째 가게가 그곳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많은 식당을 방문한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토마스(사진왼쪽)와 샌더스
그의 제안에 가게 주인인 클라우스 가족과 수석요리사인 토마스는 단칼에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여러차례 설득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하비 하우스에서는 샌더스의 치킨을 팔았고 이 치킨이 인기를 끌면서 샌더스는 독립해 자신의 치킨가게, KFC를 키우게 됩니다. 토마스와 샌더스는 서로 죽이 맞는 콤비였습니다. 토마스는 KFC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샌더스를 KFC의 모델로 쓰자는 제안도 바로 토마스가 한 것이라고 합니다.
웬디스
또한 실적이 부진한 4곳의 KFC 지점에 토마스가 직접 매니저로 가 문제를 파악하고 매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낸 덕에 그는 15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보상받으며 자신의 가게를 차릴 자본금을 확보했습니다.
딸을 너무 사랑했기에 만들어진 브랜드
그리고 1년뒤인 1969년, 그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첫 번째 웬디스를 열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8살된 딸 멜린다 루 토마스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별명이 바로 웬디였는데요. 자신의 이름을 잘 발음하기 어려웠던 어린 멜린다를 위해 지어준 별명 웬디가 그대로 햄버거 브랜드 이름으로 결정됐습니다. 풀 네임은 웬디스 올드패션드 햄버거. 여기서 올드패션은 ‘낡고 오래된’이란 뜻이 아니라 고유의 방식을 고수하겠단 토마스의 고집이 담긴 것입니다.

토마스는 미시간주 칼라마주에서 파는 사각형 모양의 패티 버거와 셰이크를 파는 키피라는 햄버거 레스토랑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첫 웬디스 버거는 정사각형 버거로 시작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와 뛰어난 맛으로 웬디스는 금방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어릴 적 그녀의 얼굴은 웬디스 햄버거를 대표하는 브랜드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웬디 토마스
이후 웬디스는 2023년 기준 총 7166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성장했습니다. 토마스는 1982년까지 웬디스 버거 프랜차이즈를 이끌다 사임했습니다. 그의 딸인 웬디 토마스는 현재 웬디스의 사내이사를 지내며 약 30개의 매장을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에서 맛본 웬디스는 상당히 큰 패티에 고열량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버거였습니다. 반대로 1990년대 한국에서 웬디스를 맛보신 분들은 어떻게 웬디스를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는 2002년 죽기 직전,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가게를 지은 것을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이 된 그녀에게 평생 큰 부담이 됐다고 하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웬디스가 이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게 이름으로 쓰고 마스코트로 활용할 만큼 딸을 사랑했던 마음 덕이 아니었을까요?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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